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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Dec 10. 2023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자존감>

 살다 보면 죽고 싶을 만큼 강렬한 수치심을 느끼거나, 부정감정이 자신을 오랜 시간 덮쳐 삶이 잿빛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제목의 이 소설은 한때 죽음을 결심했던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1년 동안 여러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한 판 벌인 뒤 죽기로 결심한다. 

 사실 그녀는 젊었고, 신체적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본적인 사회성도 있었고 전쟁이나 기근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국가에 거주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누군가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면 죽을 이유 하나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마치 단군 이래로 가장 많은 복지와 편의를 누릴 수 있는 요즘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아직도 세계 1위인 것처럼. 그렇지만 개인이 자신과 세상을 보는 시선은 절대 타인이 바꿀 수 없고 개인이 느끼는 삶의 무게는 모두 주관적이기에 타인이 결코 외부에서 가볍게 평가해선 안된다. 타인은 개인이 스스로를 변화시켜 볼 여지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결국 그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신이 계획한 대로 도박에 참여한다. 우연의 장난인지 돈을 탕진하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예상은 빗나가고 그녀는 500달러도 아닌 5000달러도 아닌 딱 5달러(우리 돈으로 만 원도 안 되는 금액)를 딴다.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 그녀는 문득 이 5달러가 마치 인생이 자신에게 주는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죽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오려고 노력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어쩌면 이렇게 매일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면 자신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최후 결정의 순간 죽음이 아닌 생을 선택한다. 이렇게 스물아홉의 그녀는 죽고 서른의 그녀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그녀의 삶은 매일매일이 자신이 선택한 선물 같은 시간이라는 저자의 말과 함께 소설은 훈훈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한때 우리나라에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그때 마침 나 역시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변화시키려고 애쓰고 있었고 진전이 없어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했다. 우울했고 그동안 쌓였던 자신감도 많이 하락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결과와 상관없이 무언가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이 상황을 보는 관점을 바꾸지 않았기에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되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고 나니 오히려 더 좋은 길을 발견했고 나는 그 환경을 벗어나서 새로운 곳에서 더 활기차게 살게 되었다. 

 우리의 자존감은 그 자체로 생의 의지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의 생의 의지를 만드는 것도, 생의 의지를 꺾는 것도 우리가 하는 매 순간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내가 특정 상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빨간 선글라스를 쓰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오목 거울 앞에 서면 내가 뒤집혀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의미부여는 선택을 바꾸고 선택은 우리의 인식을 바꾼다. 자신을 보는 시선도, 세상을 보는 관점도.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5달러에 대한 그녀의 깨달음처럼 인간은 주어진 상황에 어떤 의미든 부여할 수 있는 존재다. 또 인간은 자신이 의미부여를 한 방향대로 선택하고 이 선택은 우리의 생의 의지를 강화하거나 약하게 한다. 결국 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긍정적인 선택을 한 결과가 쌓이면 자존감은 높아지고, 부정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부정적인 선택을 한 결과가 쌓이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첫 출발점이 채움이 아닌 비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갈 더 채우기 위해 갈급해하기 전에 내 안에 있던 부정적인, 잘못된 의미부여를 모두 삭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잘못된 신념들을 모두 제거한 그 자리에 상황을 재해석한 긍정적인 의미부여와 그 의미부여에 따른 긍정적인 선택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면 충분한 것이다. 

 이렇게 생의 의지를 강화해 가는 과정을 또 누군가는 부정적인 의미부여로 '정신승리'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이 점에서 나는 정신승리가 결코 나쁘지 않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다. 환경이 어떻든, 타인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일단 살아 있다면, 그걸로도 기회는 충분하다. 헤르만헤세의 말처럼 사람은 언제나 같은 사람이 아니고, 깊이 새겨진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에 우리는 당장의 선택을 통해서 언제나 더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

 현재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동안 인생의 선택들을 어떤 방향으로 해왔는지 돌아보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주변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하고 어떤 선택들을 하며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당장 지금부터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며,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존재 가까이 갈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이미 생의 의지 충만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면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곁에 작은 빛이라도 건네줄 수 있기를 응원한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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