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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배 Oct 31. 2020

아들아, 사실 엄마가 사교육 키즈였단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교육의 힘으로 대학 문턱을 밟은 사람이다. 


지방 대도시, 서울로 치면 대치동 정도의 교육열로 유명한 동네 출신의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학원을 다니며 중학교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엎드려뻗쳐를 해 엉덩이를 맞아야 했던 그 학원은 엄마들 사이 인기가 좋았다. 학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니는 당연히 될끼다!"라던 엄마의 응원을 뒤로하고, 낯설고 차가운 교실에서 빽빽한 국어 영어 수학 시험지를 풀었다. 학교 시험에서는 늘 1등을 하던 나였지만, 그 시험은 절반도 풀지 못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나왔다.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간 학원에서 중3 수준의 수학 문제를 풀려고 끙끙거렸다. 선생님들은 늘 초록색 테이프를 두른 매를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다.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거나 하루 2시간 넘게 투자해도 할까 말까 한 숙제를 다 해내지 못하면 그 매가 내 엉덩이로 향했다. 학원을 가는 길엔 늘 침을 꼴깍 삼키며 긴장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결국 스트레스 성 탈모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특목고를 거쳐 높은 내신 성적으로 서울 상위권 대학의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 어쩌면 나는 사교육의 성공 사례일지 모른다.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여러 차례 받을 정도로 학업에 정성을 기울였다. 교환학생도 다녀와 스펙을 쌓았다. 그렇게 기자가 되었다. 그 후로 10년을 열렬히 일했다. 낯선 학원 건물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던 그날로부터 25년 동안 나는 늘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작 10년 만에 커리어가 주저앉았다. 


'그 많은 돈을 들여 학원을 다니고 밤낮 공부해 대학에 갔고, 등록금에 교환학생까지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결과가 고작 10년짜리 직장이라니.' 


대부분이 그러하듯, 스스로도 열과 성을 들였지만 부모님의 희생도 뒷받침됐으니, 나보다는 교육을 덜 받은 엄마는 충분한 고등교육을 받은 딸의 앞길이 창창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딸이 마흔도 되지 않아 직장을 때려치우겠다니 엄마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가 여성 차별을 다룬 KBS 다큐 '사표 쓰지 않는 여자들'에 출연한 것을 보고 엄마는 언짢아했다. "뭐할라고 그런 거에 나와서 니 불쌍하다고 광고하고 다니노!" 아마도 엄마는 내 직장에서의 실패를 본인의 실패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30대와 40대를 나와 내 동생들의 학원 셔틀과 교육 정보 수집에 온전히 쏟아부었다. 나만큼이나 허망할 사람이 바로 나의 엄마였다.  


이제 내가 부모로서 다시 사교육을 바라보게 됐다. 큰 아이 유치원 입학 무렵, 마침내 사교육의 세계에 진입하게 되면서 고민에 빠졌다. 


'내 아이도 나처럼 학원에 보내야만 할까. 성적표를 검사해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아온 날에는 매질도 하면서. 그렇게라도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까.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지난날 나의 정성을 보상받듯 행복한 미소를 얼굴에 머금으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되면 나도 우리 아이도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앞날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 또 어떻게 되는 거지? 나도 아이도 주저앉아 낙담해야 하는 걸까.' 


이 모든 질문에 내가 살아온 인생이 이미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아이에게 반복하라고 말할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아이가 나처럼 자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를 키운 엄마의 정성과 들어가기 힘든 학원의 프라이드, 그리고 결국은 해낸 대학 진학, 기자로서의 10여 년. 그 순간들이 내게 큰 기쁨과 성취감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내 안은 곪아 있었다. 어긋난 자기애와 열등감,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갈급하는 마음들로 나는 나보다 못하다 생각되는 타인은 함부로 업신여기고 나보다 잘난 인간 앞에서는 초라해졌다. 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남들의 시선에 나를 끼어 맞추려 하는 날들이 더 많았다. 그런 나를 발견한 순간에는 스스로가 늘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이 됐다. 


내 마음의 탁함 들을 아이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길 바라고, 타인의 성취에도 진심의 축복을 전할 수 있는 느긋함이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인생의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며 경쟁에 자신을 소진하기보다 다양한 가치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당장은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부모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이상적이라 이뤄질 수 없는 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사교육 키즈였던 엄마가 자신이 못내 살아보지 못한 자유로운 삶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모양새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은 그 길을 가보련다. 모두가 우려하는 양평행에는 부모로서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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