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마침내 땅 계약이 마무리가 되면서 명의를 이전받았다.
지난여름에 계약금을 걸었으니 무려 3개월이나 걸렸다. 아파트를 분양받는다거나, 부동산을 통해 집 계약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우리는 하고 있다.
땅 계약을 진행하면서 집의 설계도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전원주택과 관련된 온갖 책을 사 다보며 열심히 공부했다. 나보다는 남편이 조금 더 열성적이었다. 그는 가끔 "다락방을 만들어, 다락에서부터 1층까지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을 만들면 어떨까", "아이들 놀이방의 벽은 쥐구멍을 뚫어서 기어 다니게끔 하면 재밌지 않을까"라는 희한한 소리를 해서 나를 경악하게 했지만, 그 모든 과정이 우리 가족을 돌아보는 날들이 됐다.
우리가 살 집을 우리가 직접 짓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였다. 다락방은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며 울부짖는 큰 아이를 위한 도서관으로 만들어 줄 예정이다. 아이는 벌써부터 자신만의 도서관이 생긴다는 말에 폴짝폴짝 뛰며 오두방정을 떤다. 1층의 해가 잘 들어오는 방은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만들어 줄 예정이다. 그 방은 정원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 아이들이 언제든지 오고 가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2층의 방은 남편의 작업실 겸 서재로 활용할 예정이지만, 그 방에도 침대를 넣어 부모님이 오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주무실 수 있는 게스트룸으로도 쓸 것이다. 그 옆의 가족실은 나의 요가룸이다. 지붕을 만들 때 보강을 해 요가 해먹을 설치하고, 거울로 벽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알아보고 있다. 남편의 엉뚱함을 대부분 커트했지만, 딱 하나는 너그럽게 들어줬다. 그는 2층 방과 가족실 사이 벽을 뚫어 슬라이딩 책장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미끄럼틀이나 벽의 구멍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하나 정도는 그의 기이한 바람도 들어줘야 진정 우리의 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주방은 온전히 나의 취향만 반영할 것이다. 미국에서 언젠가 보았던, 빈티지한 느낌의 인테리어를 나는 찾고 또 찾으며 이 주방에서 아이들과 식사를 하는 시간을 떠올려본다.
이렇듯, 우리의 집은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땅 계약을 마무리 한 날,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양평에서 밥을 먹었다. 시원하게 들이킨 맥주로 지난 고생들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이지만, 그 한 발은 참으로 과감하지 않았나.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 조차 어렵다고 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어쩌면 우리가 시작하려 하고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우리의 집은 착공을 시작하고 여름이면 완공이 될 것이다. 내년 가을이면 우리 가족은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인생을 리셋하게 된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성실하게, 여전히 꿈을 꾸며, 현실을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