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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축하

누님의 글발은 장난 아니다

by 김세중 Mar 09. 2024

딸애 결혼식이 4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아이가 미국 사는 고모한테서 카톡이 왔는데 감동이었다며 보여주었다. 읽어보니 과연 그럴 만하다 싶었다.


내 사랑하는 선유,

12 년간의 긴 교제기간을 마감하고 인생 2막을 열어가려는 젊은 부부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너와 鄭서방이 손 잡고 함께 걸어가면 그것은 소풍이 되고,

도전의 즐거운 전투장이 되어서 한바탕 겨루어 볼만하단다.

시대를 거슬러서 예쁜 애기들의 부모가 되고,

풍성한 삶에서 큰 보람을 느끼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신세대 부부가 되길 응원한다.

달려가서 축하하지 못하여 섭섭한 맘이 가득하며,

시카고에서 너희 부부를 만나는 것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일까.


나보다 열세 살 위인 누나는 1973년 결혼하자마자 매형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니 떠난 지 벌써 51년이 지났다. 미국 시민이 된 지도 오래다. 1~2년에 한번은 늘 한국에 다녀가더니 최근엔 뜸하다. 세 살 위인 매형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장거리 여행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같이 다녀야 하는 부부라 그렇다.


조카딸의 결혼에 부쳐 보낸 메시지는 결혼이란 소풍이며 동시에 즐거운 전투장으로 한바탕 겨루어 볼만하다 했다. 51년차 부부로서 결혼에 대해 그렇게 간략히 정리했다. '즐거운 전투장'이란 표현이 눈길을 끈다. 각기 다른 배경 아래 살아온 남녀가 한 지붕 아래서 가족을 이루며 사는데 '전투'가 없을 수 없지만 그것은 '즐거운 전투'이며 그래서 한바탕 겨루어볼만한 거라고 새로운 부부에게 일러주었다.  


사실 미국에 살기 때문에 우리 아이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여러 해 전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미국에서 날아와 장례식장에서 며칠 같이 보낸 기억이 거의 전부가 아닐까. 물론 그것만이 아니긴 했다. 딸애는 몇 해 전 홀로 미국 여행을 갔고 시카고의 고모 집에서 며칠 머물렀었다. 그때의 기억이 고모한테나 조카한테나 꽤 특별하게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선유'라 했겠지... 그리고 비록 결혼식에 가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젊은 부부가 미국에 한번 다녀갔으면 하는 바램을 글 맨 끝에 남겨 뭉클하게 했다.


고모는 조카딸에게 가지 못해 섭섭하다며 축하금을 '조금' 보낸다고 했다. 100만원이었다. 몇 차례 만나지 않은 고모와 조카 사이였지만 딸앤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77세 누나의 글엔 언제나 고상함과 품위가 느껴진다. 문재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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