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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Sohn Feb 16. 2021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아름다운 미션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ᆢ최고의 미션이다.


스무 살의 여자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사랑도 가득하다. 스스로 꽤 근사하고 멋지다고도 느낀다. 하지만 아직은 약한 멘털에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술에 의지하기도 하며 힘든 순간을 잊고 싶어 하겠지만 이내 허망해진다. 그 나이는 명확한 가치관이 성립되어가는 중이고 반복되는 방황으로 자신을 둘러볼 시간도 없이 뒤처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티 나게 그리고 때로는 안 그런 척ᆢ


삼십 대가 되면 경력도 쌓여 더 나아지고 싶어 열정을 쏟지만 결혼ㆍ출산ㆍ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남자들의 군대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크게 다가온다.  혼자 몸이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지만 챙겨야 할 가족과 새 생명을 잘 맞이해야 하는 두려움도 커진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까ᆢ 

나의 삼십 대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특별 건축 프로젝트 2001 홍보실장으로 잠잘 시간도 없이 일하때였다ᆢ 그리고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 비로소 삶의 비전과 미션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결혼이란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 너무도 다른  가족이 하나 되는 상황이기에 쉽지 않은 신세계를 만나게 다. 어쩌다  만나는 지인이 아니라 낯선 문화를 지녔지만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가족이 되는 이다. 가족행사 등 챙겨야 할 것도 많은데 잘하고 싶은 욕심과 기대감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상실감마저 힘들게 한몫하기도 한다. 게다가 일터에서 무겁게 주어지는 역할까지도  해내야 하는 입장이라면ᆢ


그런 낯선 혼란 속에서 지금까지 쌓아 온 일을 접고 출산으로 휴직하고 홀로 그 과정을 참아내는 것은 무척 억울한 상황일 것이다. 게다가 나의 경우유난히 심한 입덧이 임신과 동시에 시작되었고 출산 후까지도 속되었다. 후각이 예민한 탓에 임신 중 명동을 한번 나갔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냄새ㆍ향수에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음식도 먹질 못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무 냄새만 맡으러 남산만 오르락내리락했던 기억이 난다.


 내 몸이 맘대로 컨트롤되지 않고 쏟아지는 잠 탓에 배가 고파 갔던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입덧 때문에 나의 출산의 과정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 수반되었다. 게다가 열 시간 이상 산통은 분만이 가까울수록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아프다. 족들은 병원에 같이 있었지만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ᆢ아무도 내 몫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엄마도 그렇게 나를 힘들게 낳아 키우신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감사하는 삶이 시작된다. 일에 대한 욕심이 있어 아이를 키우면서도 불안한 마음ᆢ왠지 뒤처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젊은 엄마들의 공통 감정일 것이다. 지금과 달리 산후조리원도 흔하지 않아 집에서 엄마의 케어를 받으며 너무 죄송했다.


하지만 수유하며 아기의 눈을 마주치며 함께 하는 순간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설거지하는 동안 아기가 혼자 놀다 잠든 걸 보면 짠하고 ᆢ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미라클이었다. 낯선 경험이 힘들긴 해도 멋진 추억들이다.


내게 엄마라고 불러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었다. 엄마가 되는 낯선 첫 경험은 아픔ㆍ고통ㆍ충만 속에 그렇게 나를 진짜 엄마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가장 힘든 것은 역시 한두 시간마다 깨어서 해야 하는 수유ᆢ  아기는 한두 시간마다 조금 먹고 또 깨어서 밥 달라고 울기를 반복한다. 본의 아니게 엄마는 몸도 회복되지 않았는데 잠자려고 하면 깨는 걸 24시간 반복하는 것이 몇 달을 지속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친정 엄마는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노심초사 속상해하셨지만 딸은 그렇게 고생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더 마음이 미안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나의 아기가 그 작은 입으로 고 말하고 웃으며 바라보는 이쁜 모습들은 그 모든 아픔을 치르고 얻은 대가인지라 아프고 힘든 만큼 귀하게 감사로 다가왔다. 


아들은 `고운 잇속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라는 시구가 떠오를 만큼 이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이 키우는 것이 지금 정도의 몸 상태여도 해볼 만했을 텐데 ᆢ아이를 낳으면 온 몸의 뼈가 늘어났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해 쉽지 않았다. 몸은 으스러지듯 프기 시작하는일터에 복귀하면서 힘겨운 상황은 증가되었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당당히 육아 휴직도 하련만 20여 년 전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 30년 내 업력을 보면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정의 나``일터의 나` 중에서 후자만 보고 하는 말 일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 준비ᆢ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계속되는 육아 ᆢ부모님 덕분에 육아의 도움을 받았지만 퇴근해 저녁 식사하면 9시 ᆢ치우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이다. 아이에게 더 집중해야 하나 하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고 해내느라 몸은 골병들기 시작한다. 성격상 도우미를 쓰지 않고 30년째 일과 가정을 케어하고 있다. 결국  가족의 이해와 배려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에는 후배들의 결혼과 출산이 늦어져 40대에 연년생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들도 많다. 젊어서 하는 육아도 힘든데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제 나의 아들은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되어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 일을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고 느끼면서도 또 한편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예전에 휴렛패커드 사회공헌팀과 어린이재단에 성공한 사회공헌 마케팅을 특강으로 소개 학고 난 후 누군가 내게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국제개발협력 비영리단체ㆍ국제기구ㆍ과학기술단체ㆍ미국 대학 등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사시켜 오셨는데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나는 바로 답했었다.

 "아들을 낳아 키운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그 답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기에 대한민국 워킹맘들을 응원한다. 예전보다는 조금씩 복지가 나아지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어 개선되고 있다.  여전히 엄마로서 워킹맘으로서의 무게는 버겁겠지만 젊은 워킹맘 후배들에게 서로 격려하며 응원 속에 버텨보자고 제안한다. 힘들지만 아픈 만큼 단단해지고 깊어져 가정의 중심을 잡고 주변을 끌어안는 `embracing leadership` 이 생길 테니까~~~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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