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료들은 나의 육아휴직을 어떻게 생각할까?

긴장된 마음으로 동료들에게 휴직 사실 전하기

by 녹차라떼샷추가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단을 내렸으니

동료들에게도 이를 알려야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조심스럽더라.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임신한 여직원을 향해 동료 직원들이

"진짜 이기적이야"라며 험담을 하던 그 장면.

당시 이 장면은 많은 여성들에게 공분을 샀다.

내게 그다지 인상적인 장면은 아니었으나,

막상 내가 육아휴직을 하는 입장이 되고 나니

그 장면에 분노했던 사람들에 공감하게 되었다.

"이러니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하지"


"진짜 이기적이야" (출처: 드라마 미생)



지금까지 봐 왔던 회사 동료들은

미생에 나온 이들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내 선택을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당장의 빈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야 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남은 동료들 몫이 될 터였다.

회사 동료들이 내 기대와는 다르게

내게도 냉소적인 눈빛을 보내진 않을까.

마음 한편에서 걱정이 점차 커져갔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최종 승인이 나고,

동료들에게 한 명씩 면담을 요청했다.

전략기획본부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보니

회사에서 동료들에게 나름 영향력이 있었다.

따라서 단순히 육아휴직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왜 육아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를

좀 더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선택을 비난할 동료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비난에 위축될 필요는 없었다.

동료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질 사람은 결국 나였다.


다행히 면담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내 선택을 아쉬워하는 동료들은 있었지만

나를 이기적이라며 비난하는 동료는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었던 건 동료들의 다양한 반응.

빈도가 많았던 순서대로 유형을 분류해 봤다.

정리해 보니 7개 유형이나 된다.


첫 번째는 가장 많았던 '무한 응원'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이들은 감사하게도 내 상황을 깊이 공감해 줬다.

응원의 편지와 함께 인생 책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처음에 내 선택을 비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동료들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미안함이

이들의 응원 덕분에 조금씩 풀어져 갔다.

가족과 친구들이 아닌 회사 동료들로부터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두 번째는 의외로 많았던 '비밀 공유'

"저 사실..."

내가 곧 휴직한다는 걸 알게 된 동료 중 일부는

여러 비밀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평소 나를 어떤 동료로 생각했는지부터

이직 고민, 연애 상담, 창업 계획, 건강 문제까지

'이런 걸 나한테?' 싶을 내용도 많았지만

본부장일 때에는 쉽게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더 늦기 전에 나와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먼저 육아휴직 사유를 설명하면서

아내의 유산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 같은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영향인 것 같기도 하다.

서로의 사생활을 드러내 놓고 나니

이들과는 부쩍 친밀감이 높아진 기분이었다.


세 번째는 누가 봐도 T인 '대책 마련'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지?"

평소에도 그렇지만 한결같이 딱딱한 사람들이다.

아마도 MBTI 유형 중 T 일 것이다.

이들은 회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며

일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이들과의 면담에서는 육아휴직 배경 설명보다는

앞으로 남은 업무 처리, 인수인계, 후임자 선임 등

후속 조치 논의에 대부분 시간을 쓰게 되었다.

사실 나도 'T'라 이들과의 대화가 오히려 반가웠다.


네 번째는 아쉬움이 묻어났던 '바짓가랑이'형

"한 달 미뤄주면 안 될까? 파트타임은 안 될까?"

몇몇 동료들은 내가 마지막 휴직하는 순간까지도

나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이들도 내가 휴직을 철회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몇 번씩 애원했다.

경영진과 리더들 보다는 의외로 후배들이 많았다.

후배 한 명은 너무나 당당하고 솔직하게 내게

"6개월만 더 있어 주면 좋겠어요!"라며 얘기했다.

내게 많은 걸 배우며 성장하고 있었던 지라

내가 없는 1년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는 의미였다.

이런 후배들은 기특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존재다.

아마 휴직을 마치고 내가 1년 뒤에 돌아오면

오히려 내가 이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는 휴직 경험자의 '활동 추천'

"돈 생각 말고 마음껏 가족들과 시간 보내"

이미 휴직을 경험했던 동료들도 꽤 있었다.

특히 남자 동료 중 육아휴직 경험자들과

긴 시간 휴직 경험이 있던 분들은 저마다

의미 있는 휴직 기간 보내기 방법을 풀어놨다.

'공부는 하지 말고 운동에 집중하라'거나,

'아이 등하원을 꼭 해주라'거나,

'해외여행을 마음껏 다녀보라'거나 등등

모두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조언들이었다.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

휴직 경험자들은 하나 같이 휴직 기간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던 시간으로 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되길...


여섯 번째는 고뇌에 빠진 '나도 한번?'

"나도 육아 휴직을 써볼까...?"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과 워킹대디.

뭐 이 사람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겠는가

다들 눈치 보며 혹은 희생하며 견디는 거지.

나의 육아휴직 소식을 들은 몇몇 동료들은

'우리 아내도 애 키우느라 힘들어하는데...'

라며 말을 삼켰다.

본인도 가정을 생각하면 휴직을 하고 싶지만

앞으로 커리어에 대한 불이익이 걱정되고

당장 줄어들 가계 수입을 감당하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이 동료들도 용기가 필요한 때에

담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 기대를 해 본다.

이 세상의 모든 워킹맘, 워킹대디 파이팅이다!


마지막으로 멘붕에 빠진 '현실 부정'

"이건 아닐 거야... 다음 주에도 출근하실 거죠?"

나와 워낙 가까이 일하던 동료 한 명은

나와의 회의마다 내 휴직 사실을 부정하려 들었다.

휴직 전 마지막 근무일에 해당 동료와 인사를 했다.

그 동료는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 주에도 내가 출근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럴 리 없다'라고 정색했다. 장난으로.

아마 그 동료는 나와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아쉬우면서도 섭섭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뭐 나도 그와 똑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동료들은 저마다의 성향과 방법으로

내 상황을 공감해 주고 내 선택을 응원해 줬다.

혹여나 동료들이 나를 비난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번에 육아휴직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리면서

멋진 동료들과 함께 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회사 생활을 잘했다는 안심도 되었고.


일단은 동료들에게 육아휴직 알리기 미션을

무사히 마친 걸로 이 글은 마무리하자.







keyword
이전 01화결단! 육아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