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휴직, 가정을 구하다〉연재를 마치며
아내가 지난주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6개월간 공부하는 아내를 외조하는 제 역할도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아빠 육아휴직, 가정을 구하다〉 브런치북 연재도 여기서 끝맺음을 하려 합니다.
2024년 8월, 아내가 유산을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유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모든 것이 제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전까지 아내는 임신한 몸으로 박사학위 논문 준비와 첫째 육아를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니던 회사의 상장과 사업화를 주도하는 전략기획본부장으로서 일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었지만 아내에게는 조금의 위로도 건넬 자격이 없는 남편이었습니다. 이후 아내의 건강회복과 박사학위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9월부터 육아휴직을 시작했습니다.
<아빠 육아휴직, 가정을 구하다> 브런치북은 휴직하고 육아를 전담하게 된 남편이자 아빠의 속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속마음을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불안'과 '강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결정한 건 다시 생각해도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휴직 기간 동안 제 커리어에 다음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짓눌려 지냈던 건 사실입니다. 이 같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휴직 기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저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휴직 기간이 아이와 소중한 추억을 쌓고, 아내에게 신뢰를 회복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채로 지내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불안과 강박의 양 끝단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브런치북 연재글 덕분입니다. 지난 6개월간 45편의 글이 쌓였습니다. 작성한 글을 살펴보니 주제도, 형식도, 내용도, 날짜도 두서없이 빨래더미에 던져놓은 빨랫감처럼 너저분하게 쌓여만 있었습니다. 무언가 잘 엮어서 정돈할 여유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잘 살아야 한다는 의욕으로 지냈던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육아휴직 기간은 적어도 아내가 박사논문 졸업할 때까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졸업하면 다 같이 프랑스 파리로 졸업 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여행은 조금 미뤄둬야 할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을 하던 중 올해 1월부터 한 광고 회사에 공동창업자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휴직 기간 동안 커리어에 대한 불안에 짓눌려 살았는데, 아예 회사를 차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인생은 정말로 한 치 앞도 모르겠습니다. 창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 고민의 주제도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바람직한 남편과 아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효율적으로 똑똑하게 일하기 위한 고민이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창업자로서 작은 바람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주인인 회사는 일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는 점입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과거의 제 자신처럼 일에 너무 몰두하느라 가정을 위기로 몰아세우지 않고, 반대로 자기 편의를 위해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보려 합니다.
과분하게도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셨습니다. 제 글을 읽고 '마음이 행복하고 따뜻해졌다'라는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불안과 강박을 안고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족 안에서 작은 행복과 온기를 더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브런치 활동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조만간 다른 주제로 작가님들에게 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