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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지 Nov 14. 2020

퇴근 후 운동하고 책을 읽어도 시간이 남는다고?

이래도 되는거야?

만약 독립하게 된다면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의 루틴이 있었습니다. 퇴근 후엔 운동을 다녀오고, 집에 와선 고요히 저녁 독서를 하는 삶.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저에겐 왕복 4시간 넘게 걸리는 출퇴근 길 위에서, 좁디좁은 만원 버스 안에서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시간이었습니다.


독립 후 50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얼추 살림이 정리되니 저녁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로망 하던 루틴을 실험해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차를 내어 러닝화를 구입하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해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집 근처 공원으로 나섰습니다. 공원에 도착하고 느낀 점은 근면한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젊은 사람들도 무척 많았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러닝 하는 크루들, 짝지어 오순도순 걷는 친구들, 음악을 들으며 혼자 운동하는 사람들 등 땀을 흘리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HOKA라는 브랜드에서 러닝화를 구입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시절, 특히 퇴근길 버스 안에서 저는 수많은 사념에 사로잡혔었습니다.


'괜히 회사에서 내 사적인 얘기를 했나?'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한 거지?'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을걸'


1시간 30분이란 시간 동안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진즉에 남들은 신경 꺼버린 일들을 다시 꺼내어 곱씹으면서 스스로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나날들은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로 집에 도착했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저녁 10시가 다 되었었는데요. 사념으로 인해 멘탈도 남아있지 않았을뿐더러, 출퇴근 자체가 노동의 연장이고 체력 소모였기 때문에 운동할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씻고, 밥 먹고, 한숨 돌리면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향해 있었습니다. 저는 제 기분을 돌볼새도 없이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잠에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 운동은 이러한 사념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운동하는 순간만큼은 현재의 기분과 감정에 충실해졌습니다. '이 노래 끝나고 뛰어야지', '아, 마스크 벗어던지고 싶다' 등 '지금'에 집중하다보니 머릿속 실타래가 복잡하게 꼬이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덕분에 요즘엔 러닝에 푹 빠졌습니다. 비록 10분 걷고 1분 뛰는 런린이 of 런린이지만 달리고 나면 호흡이 벅차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기에 그 매력이 무척 좋았습니다. 로망 때문에 시작한 운동인데 겸사겸사 멘탈 건강도 챙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첫 운동을 마치고 시계를 봤습니다. 저녁 8시 50분, 아직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본겨?


맙소사.. 원래 같으면 길 위에 있어야 하는 시간인데. 약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집에 도착해 씻고, 열량을 보충하고, 저녁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책은 읽고 싶을 때까지 읽었습니다. 시간에 쫓기기 싫어 시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고요한 방 안에서 독서를 하니 슬슬 잠이 몰려왔습니다. 잠잘 준비를 하고 시계를 봤습니다. 시간은 11시 50분.. 엥? 아직 자정이 아니라고?(물음표 백만 스물두 개) 이때 느낀 감정은 의외로 '좋다', '보람차다'가 아니었습니다. 약간의 놀람과 현실 부정이었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고,  이런 게 가당키나 한 건지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아직까지도 딴 세상 이야기 같습니다. 언제쯤 적응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적응해 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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