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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드펜 Sep 02. 2024

독서와 노화

노화 - 마음

"노화된 두뇌는 단순히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놓아주는 법을 배운다."

— 칼 융 (Carl Jung)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독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재미있는 책들도 많지만, 나에게 독서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마치 건강을 위해 하기 싫은 운동을 억지로 하듯, 독서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규칙적인 운동이 몸을 건강하게 해주듯, 독서는 내향적인 나에게 삶의 커다란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결혼하고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30대 시절, 소설 한 권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나에게 책은 힘든 현실을 버티게 해주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늦게까지 일하고 지친 몸으로도 책을 펼쳤다. 매년 200권 이상 꾸준히 읽어온 덕분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힘든 시기를 함께 겪고 이겨낸 든든한 동반자이자 인생의 안내자였다.


독서에는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바로 돈, 시간, 시력, 그리고 체력이다.


먼저, 책을 읽으려면 경제적인 부담이 따른다. 매년 수백 권의 책을 사면서 적지 않은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책 한 권으로 얻는 가치는 100만 원"이라는 생각에 인터넷 서점에서 장바구니를 클릭하곤 했지만, 배달되는 책만큼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할인율과 마일리지 혜택이 줄어들어 부담이 더 커졌다. 요즘은 알라딘 중고서점을 자주 이용한다. 상태가 좋은 책을 사서 읽고, 다시 팔면 책값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도서관에 가는 방법도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도서관에서 대여도 해봤지만, 가야 하는 시간적 부담과 원하는 책이 없을 때의 아쉬움, 그리고 2주 만에 반납해야 하는 시간적 압박이 독서의 즐거움을 반감시켰다.


시간도 매우 중요하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면, 마치 숙제를 하듯 시간을 정해두고 읽어야 한다. 한 챕터나 일정 페이지씩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읽는 것이 필요하다. 가끔 책 속에 푹 빠져들어 쭉쭉 읽을 때도 있지만, 딱딱하고 무거운 내용의 책들은 그러기 쉽지 않다. 없는 시간을 만들어 읽는 꾸준함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생겼다. 바로 노안이다. 예전처럼 책을 오래 읽어내기 쉽지 않다. 밤에 20분만 책을 읽어도 눈이 침침해지고, 때로는 따끔거리는 통증까지 생긴다. 독서용 안경을 따로 맞췄더니 좀 낫긴 하지만, 장시간 독서는 여전히 무리다. 독서등을 켜고 읽다 보면 글씨가 흐릿해지고, 읽고 나서도 한동안 초점이 맞지 않아 TV나 스마트폰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나눠서 읽는 방법이 무난하다.


마지막으로 체력이 필요하다. 한때는 주말마다 등산을 다녔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워터파크에서 놀 수도 있었다. 밤늦게까지 회식을 해도 다음 날 부담 없이 버틸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지만, 이제는 바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독서에 필요한 체력은 단순한 신체적 체력 외에도 뇌의 활동력이 포함된다. 아이들의 수학책을 보며 지금은 못 푸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것처럼, 독서도 그렇다. 예전에 읽었던 어려운 책들을 다시 꺼내 읽으면 ‘그때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이해했을까?’ 싶다. 나이가 들면 지식이 쌓여 독서가 더 쉬워질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집중력과 추진력이 예전 같지 않다. 우리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 체력이 떨어지면 책 읽기도 귀찮아진다. 운동으로 기초 체력을 기르고 자주 책과 접하는 수밖에 없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다. 과거에 읽었던 비슷한 주제의 책을 다시 읽으면 알고 있지만 잊어버린 내용이 많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기억에서 희미해져 있다. 기둥은 혼자만의 힘으로 서 있을 수 없다. 책은 내 주변을 튼튼히 다져주는 기둥이다. 책장에는 주기적으로 꺼내 읽는 책들이 있다. 길을 걷다 중심에서 벗어날 때 다시 안쪽으로 걸어가도록 도와주는 안내자들이다.


누군가 나를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한계를 지적하면 강하게 저항하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 스스로의 생각을 바꾸기 쉽지 않다. 그럴 때 책은 변할 수 있도록 다독이고 지원해준다. 책은 한계를 인정하고 도전하도록 길을 열어주며,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게 해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가 되어 준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듯, 마음의 건강을 위해 독서라는 친구와 함께하자.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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