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환경이 습관을 무너뜨린다
습관이 무너지는 건, 거창한 위기 때문이 아니다.
의외로 사소한 변화에서 흔들린다.
여행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 며칠 동안은 마음이 그렇지만은 않다.
일정을 짜고, 짐을 꾸리고, 빠뜨린 건 없는지 몇 번씩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루틴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몸은 피곤하고, 밀린 일들은 산더미 같고,
겨우 돌아온 일상인데도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예전처럼 책을 펼치고, 노트를 꺼내고, 익숙한 루틴을 이어가려 해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던 자리인데, 어딘가 어긋난 것만 같다.
이사를 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비슷했다.
환경이 바뀌면, 몸보다 먼저 마음이 흔들린다.
그 낯섦 속에서 기존의 습관은 자리를 잃고
어느 순간, 하루 이틀 건너뛴 루틴은 흔적조차 희미해진다.
특히 관계에서 생기는 변수도 크다.
예상치 못한 회식, 친구의 갑작스러운 연락,
가족과의 말다툼, 지인들과의 감정 싸움,
단지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한 날에도
습관은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난다.
기분이 좋지 않은데 억지로 명상을 하기도 어렵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감정이 흔들린 날엔
책 한 장 넘기는 일조차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습관은 내 마음의 날씨와 더 가까운 존재다.
맑을 땐 자연스럽게 피어나지만,
감정이 흐리면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춘다.
그럴 때마다 아쉬움보다
조금은 불안한 감정이 먼저 밀려왔다.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하는 조바심.
습관을 꼭 붙잡고 있어야
내 일상이 유지되는 것 같다는 강박.
다행히 다시 돌아오게 만든 건
대단한 계기보다는 ‘작은 의지’였다.
책을 멀리했던 시기에도
‘일단 펼치고 타이머를 눌러 10분만 읽어보자’고
몸부터 움직이면 조금씩 감각이 되살아났다.
습관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만,
그만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습관이다.
나에겐 거실 식탁 한쪽이 그런 공간이다.
그 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레 펜을 들게 되고,
옆에 쌓아둔 책들, 앞에 놓인 타이머가
평소 하던 걸 다시 이어가게 해준다.
일상 속에 숨겨둔 작은 복귀 버튼 같은 곳이다.
반대로, 어떤 습관은
환경 때문에 쉽게 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마음을 다잡고 싶어도
옆에서 가족이 자고 있거나
거실엔 벌써 TV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면
짧은 명상 한 번, 기도 한 줄도
괜히 어색하고 신경이 쓰인다.
혼자만의 고요한 루틴을 만들고 싶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조용히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습관은,
나만의 틈을 찾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완벽할 순 없지만 괜찮다.
잠시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익숙한 리듬,
잠깐이라도 나를 회복시키는 공간과 시간이 있다면
습관은 다시,
나를 삶으로 이끄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