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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 루틴을 엮는 힘

by 골드펜

“습관 하나보다 두 개가 오래 간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다시 집을 나선다.
걷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운동일 수 있지만, 내게 걷기는 단순히 몸의 움직임을 위함이 아니었다.


처음엔 단지 체력을 회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습관이었다.

몸이 지쳤다는 걸 느꼈고, 이제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운동부터 해보자”는 단순한 다짐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이 단순한 행위에 많은 것이 얽혀 갔다.
몸이 개운해졌다.
소화가 잘됐다.
생각이 정리됐다.
감정이 풀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걷기’는 ‘퇴근 후’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몸, 복잡한 사람 관계, 어딘가 억눌린 감정.
그 모든 걸 안고 집으로 들어가면, 일상의 피로가 고스란히 남는다.
그래서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털고 가는 거다.
마치 정리 운동처럼.


걷는 동안은 명상처럼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어떤 날은 전날 과음으로 머리가 무겁다. 그래서 걷는다.
어떤 날은 감기 기운이 있다. 그래서 걷는다.
어떤 날은 스트레스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래서 걷는다.
겨울엔 너무 춥다. 그래서 걷는다.
무리해서 과식한 날도 있다. 그래서 걷는다.


걷기는 언제나 이유를 만들어주고, 그 이유는 곧 걷기를 정당화한다.
결국 습관 하나가, 여러 상황에서 나를 회복시키는 다목적 루틴이 된 셈이다.
그게 ‘하나의 루틴이 다른 루틴을 끌고 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억지로 연결했다가 실패한 루틴도 있었다.
예를 들면 ‘걸으면서 오디오북 듣기’.
처음엔 한 번에 두 가지를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빠른 걸음에 집중하면 책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디오북에 집중하면 걸음이 자꾸 흐트러졌다.
결국 두 가지 모두 마음에 남는 게 없었다.


‘영어 자기계발서 필사’도 그랬다.
영어 실력도 늘리고, 자기계발서 내용도 익히겠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한 장씩 영어 문장을 베껴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쓰다 보니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앞섰다.
손은 그저 글자를 따라가기 바빴고,
책 내용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부지런하고 멋진 루틴 같았지만,
속으로는 점점 강박이 자라났다.
그 루틴은 어느새 ‘못 하면 불안한 습관’이 되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좋은 루틴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자연스럽게 이끄는 구조여야 한다.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반복될수록 그 연결이 나를 지탱해주고
삶의 리듬을 조금씩 더 단단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꼭 정해진 형태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아침 햇볕을 쬐며 물 한 잔 마시기,
누군가는 저녁 산책 뒤 따뜻한 차 한 잔 하기,
또 누군가는 퇴근 후 음악 틀고 짧게 방 정리하기처럼
작고 단순한 루틴을 엮어낼 수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흔들린다.
지치고, 불안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는 건
삶 속에 숨겨진 작은 행운이다.


중요한 건 거창한 루틴이 아니다.
하나의 습관이 다른 습관을 이끌어
서로를 지켜주는 작은 구조를 만드는 것.
그렇게 엮인 루틴은
억지가 아니라,
나를 부드럽게 붙드는 조용한 힘이 된다.


루틴은 단독으로도 의미 있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자연스럽게 이끌 때
그 지속력은 훨씬 강해진다.
작은 행동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 루틴이 눈에 띄는 성과를 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오늘 하루,
조금 더 나은 마음으로 나를 붙잡아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니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차 한 잔,

잠깐의 산책,

마음을 비우는 짧은 메모.

그런 작은 루틴들이 쌓이 손을 잡고 이어지면

어느 날 문득,

그것들이 고요히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음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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