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이 분명한 업무들이 발등에 불로 떨어지기 직전인데 정말 하기 싫다. 아니 컴퓨터 앞에 앉는걸 싫어한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한 명의 나는 '미쳤어? 곧 데드라인이 다가오는데, 자꾸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할거야?'
그럼 또 다른 나는 '나는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아 몰랑 오늘은 컴터 전원도 안 킬거야!' 이러고 대치 상태이다.
자꾸 밤을 지새우던 날들, 나를 혹사시키며 일하는 버릇 이 나를 또 갉아먹을까봐 계속 간 보고 있는 것이다.
아카시아 나뭇잎 떼면서 간보던 어릴 때야, 그애가 나를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이런 낭만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내가 이 일에 착수하면 '잠 안자고 일한다', 아니다 '잘 수 있다'... 이런 간보기라니. 딱한 노릇이다.
오늘은 하반기 들어 처음으로, 오랜만에 강의도 코칭도 없는 온전한 휴일을 보냈다. 휴대폰도 꺼버리려고 했는데 때마침 걸려온 업무연락을 몇 번 해야 했던 것은 안 비밀이다.
이렇게 쉬게 된 날에는 자꾸 정리할 것들이 보이고 의례 발동이 걸려 대청소를 하거나, 굳이 내일 해도 되는 업무를 땡겨서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았던 나였지만 오늘만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던 독감주사도 맞았다. (다행히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휘유~ ) 자꾸 졸음이 와서 책읽다 쓰러져 낮잠도 잤다.
예전 같았으면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냐, 어서 일하라'고 질책하는 내가 늘 백전백승을 거두었을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하기시러병' 에 걸린 내가 꽤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나는 30년 넘게 "반드시 ~~ 해야 돼 (I have to do~ I must~)" 라는 최면에 걸려 좀비처럼 공부와 일의 노예로 살았다. 자유로운 영혼이 갇혀 있었으니 꽤 버겁고 억압당하는 삶이었다. 물론 그렇게 고군분투 한 끝에 얻은 업무역량이 많다는 건 무시못할 결과이다. 그런 '일과의 갑을 관계'는 이제 그만 청산하려 한다.
내가 애정해 마지않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에서 발리의 스승 카투는 이렇게 말한다.
균형이 깨져야 새로운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거야. Balance Darling~
앞으로 나는 내 삶의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보려고 한다.
일하기 싫을 땐, 일하기 싫어하는 나를 애틋하게 바라봐준다.
그저 그 상태에 머무르며 힘들어하는 나의 상태도 지금 이대로 썩 괜찮다.
무언가 대단한 걸 성취하지 않아도, 무언가 계속 만들어내지 않고 잠깐 쉬고 있는 나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