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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03. 2022

처음부터 끝까지 지리는 책

<먹는 것과 싸는 것>을 읽고


'지리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국어사전에 따르면 '지리다'의 정의 다음과 같다.

똥이나 오줌을 참지 못하고 조금 싸다.

예) 나는 순간적으로 온몸이 짜릿하면서 몸서리가 쳐지더니 찔끔 오줌을 다 지리고 말았다.

- 네이버 국어사전 중 -



또 하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오줌을 조금 싸다의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쓰인다. 즉, 어떠한 상황이 오줌을 조금 쌀 정도라는 뜻이다. 실제로 오줌을 지리는 경우는 보통 무서운 상황, 깜짝 놀랄만한 상황이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실제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지만 강조의 표현으로 쓰인다.

실제로는 엄연한 표준어이고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나 어휘력이 부족한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여 마치 사투리나 비속어처럼 인식하고 쓰인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문학 작품이나 방송 드라마에서도 쓰인 표준어의 일반적 표현이다.

- 나무위키 중 -



이처럼 '지리다'를 국어사전처럼 정의하든 나무위키에서 말하비유적으로 정의하든간에 그 모든 정의를 충족하는 책이 있다. 바로 가시라기 히로키의 <먹는 것과 싸는 것>이다.


저자는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궤양성 대장염은 일단 걸리면 평생 낫지 않는 난치병이다. 병의 증상은 중증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쉽게 표현하자면 나의 의지로 '싸는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 즉 먹으면 지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지리는 것의 정의가 '조금' 싸다이다 보니 지린다는 표현도 적합하지 않보이기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구분 짓기 위해 수많은 형용사 동원한다. '생각하는' '도구를 쓸 줄 아는' '추상화할 수 있는' '기록하는' 등등등.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은 '먹고 싸는' 동물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싸기만 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혹은 행복하다는 증거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기본적인 행위에 문제가 생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먹고'와 '싸고'가 당연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며 인간에 대 깊이 있는 통찰을 하게 된다.


먼저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음식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다. 가족 혹은 조직 구성원의 친밀성을 강조할 때 '식구(食口)'라는 말을 쓴다. '먹을 식(食)'에 '입 구(口)' 즉, 같이 먹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자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 중에서 종교는 저자가 말하듯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공고히 해왔다.

종교를 예로 들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싶다. 대부분의 종교에는 '이건 먹으면 안 돼.' 하는 계율이 존재한다. 음식에 관한 제한은 종교의 부록 같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먹는 것이 일치하지 않으면서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같은 음식을 먹는 종교 사람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먹기와 커뮤니케이션, 함께 먹기에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잇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미 친한 사람들의 관계를 끊어내는 힘 역시 강하다.

- <먹는 것과 싸는 것> 중 -


그리고 '싼다'는 행위는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행위다. 가장 내밀한 나만의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싼다'는 행위를 타인에게 들켰을 때의 수치심은 쉽게 굴욕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궁극적으로 복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흥미로운 심리 실험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해보았다. 돈을 빌려달라든가, 무언가 가져와달라든가. 그렇게 해보니 다른 장소에서 부탁했을 때보다 현저하게 높은 확률로 승낙해주더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앞서 말했듯 배설은 부끄러운 일이다. 즉, '타인 앞에서 창피를 당하면, 타인에게 쉽사리 복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 <먹는 것과 싸는 것> 중 -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은 이처럼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먹고' '싸기'의 문제들로 인해 당연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경험하면서.


'먹고' '싸기'처럼 숨 쉬듯 반복되는 행위는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별다른 노력없이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기적적인 일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당연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 이 자각이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그것을 우리는 누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이 책은 이런 면에서 진짜 '지린다'!



사진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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