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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Apr 02. 2024

차단은 배려다

차단은 배려다.

누군가의 댓글이 꼴 보기 싫다는 말은
댓글을 단 사람에게 내 글이 꼴보기 싫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의 글이 싫었을 확률이 높다.

그럴 때는 꼴 보기 싫은 내 글이 안 보이도록
차단을 해드리면 된다. 그래서 차단은 배려다.

- 방금 한 분을 배려해드렸다.


[사족]


대부분의 SNS에는 '차단'기능이 있다.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없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글도 계정도 그 어떤 것도. SNS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용을 꺼리는 듯했다. 아니 사용하더라도 찝찝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그 이유는 차단을 타인에게 가하는 형벌로 인식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차단은 일방적인 '형벌'이라기보다는 서로를 위한 '배려'라고. 우리는 누군가를 왜 차단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악플러'라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나 혹은 내가 한 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들은 왜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까? 글쓴이가 의도를 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의 콤플렉스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바로 칼 융이 정의한 그 콤플렉스를 건드렸기에 악플러로 변신한 것이다.


감정에 의해 채색된 복합체(Feeling-toned Complex)라고 불렸었던 콤플렉스는 특정한 것에 대한 자기 방어 기제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외모에 심한 콤플렉스를 갖는 사람은 미남미녀를 보았을 때 극도로 강한 감정을 느끼거나 표출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물론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콤플렉스는 지극히도 평범한 단어가 촉발시킬 수도 있다. '화창한 날씨'라는 단어나  '축구'라는 단어에 극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라는 존재 혹은 '나의 메시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면 해결할 수 있지만 얼굴도 모르는 온라인상의 불특정 다수와는 해결이 극히 어렵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는 차단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콤플렉스를 다시는 건드리지 않도록 말이다. 상대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다. 상호 간에 좋다. 그래서 나는 차단은 배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마케팅을 잘 모르지만, 마케팅을 잘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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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Pasha Chusovi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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