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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10. 2024

브랜딩의 탄생


브랜딩은 상당히 복잡한 개념이다.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생각이자 소비자의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이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광고, 홍보는 오롯이 생산자 관점에서 정의 내릴 수 있지만 브랜딩은 소비자 관점에서 완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게 복잡하고 모호한 개념을 알아볼 때는 단어의 시작점으로 가보면 큰 도움이 된다.


먼저 브랜드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브랜드는 ‘태우다(to burn)’라는의미의 고대 노르드어 ‘Brandr’에서 비롯되었다. 과거에 목장주는 본인이 키우는 가축에 ‘종원이네’, ‘은영이네’와 같은 각자의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표시했는데 이 낙인을 브랜드라고 부른다. 브랜드를 찍는 행위는 브랜딩이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유주를 표시하는 데 그쳤지만, 소비자에게도 점차 어떠한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같은 소라도 ‘종원이네’라는 낙인이 찍힌 소가 더 건강하다든지, ‘은영이네’라는 낙인이 찍힌 말이 더 빨리 달린다든지와 같은 인상이 생겼을 것이다. 또한 그에 따르는 호불호, 즉 감정이 생겼을 것이다.


사람도 비슷하다. 고대 로마 문명 초기에는 전 국민이 토가 (Toga)를 입었다. 계급에 상관없이 남녀노소 모두 하얀색 양모로 만든 반원형 천을 어깨와 몸 주변에 걸쳐서 입은 것이다. 기원전 2세기에 들어서서 큰 변화가 생겼다. 차별화된 토가를 입을 수 있는 이들을 규정하는 사치 금지령이 내려진 것이다. 남성 정치 계급만 특정 디자인이나 염료로 물들인 토가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가축에 낙인을 찍듯 옷에 염료를 물들인 것이다. 이때부터 옷만 보고도 사람들은 특정한 인상을 갖고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일종의 퍼스널 브랜딩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개념의 브랜딩은 언제 탄생했을까? 산업 혁명 이후 대량 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세기 후반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량 생산이 본격화되기 이전, 즉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을 때는 생산자가 왕이었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쇼윈도가 있는 매장은 거의 없었다. 소비자는 상점에서 무엇을 파는지도 모르고 들어가서 무엇이라도 사서 나와야만 했다. 눈으로만 둘러보는 윈도우쇼핑(아이쇼핑)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생산자가 ‘특별히 팔아 준다’는 갑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 이후에는 공급이 점점 늘면서 소비자 중심의 상점이 속속 등장했고 상황이 역전됐다. 소비자가 ‘특별히 사 준다’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먼저 화려한 쇼윈도를 갖춘 오늘날 상가에 해당하는 마가쟁 드 누보테(Magasin de Nouveautés)가 등장했고 이어서 오늘날 백화점에 해당하는 거대 규모의 그랑 마가쟁(Grand Magasin)이 등장하여 본격적인 소매업의 탄생을 알렸다. 이때부터 브랜딩이 본격적으로 필요해졌다. 우리 제품이 경쟁사의 제품보다 낫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려야만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브랜딩은 단순한 ‘구별 짓기’에 가까웠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모두가 어렴풋이 브랜딩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그것이 명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브랜딩은커녕 ‘마케팅’이라는 용어도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전문서적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당시 주류 경제학자들은 모든 경제현상을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격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았던 일부 경제학자들이 소비자 중심의 시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에 비로소 최초의 마케팅 교재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1929년 대공황은 브랜딩에 불을 지폈다. 공급은 넘쳐나는데 수요가 부진하니 브랜딩의 중요성이 더더욱 부각된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브랜딩을 정교화한 기업 중 하나가 오늘날 ‘마케팅 사관학교’라고도 불리는 P&G(Procter & Gamble)이다. 우리에게는 페브리즈, 질레트, 오랄비 등으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P&G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브랜드 관리 체계 (Brand Management System: BMS)를 도입하고 각 브랜드에 담당자를 배정했다. 이를 다양한 기업들이

모방하고 발전시키면서 브랜딩은 점차 고도화되기 시작했다.


브랜딩의 탄생부터 현대 브랜딩의 초기 단계를 보면서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브랜딩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구별 짓기’라는 몸부림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상품과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구별 짓기를 위한 몸부림은 더욱 더 정교해지고 치열해진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구별 짓기는 단순히 소비자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슴에서도 루어진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좋은 브랜드가 있고 그냥 싫은 브랜드가 있다. 머리는 구별할 수 없지만 가슴이 구별하는 브랜드가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브랜드는 ‘머리’와 ‘가슴’의 합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최종적으로 ‘정체성’이 된다.


근대 과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서 조금 더 멀리 볼 차례다. 소비자의 ‘머리’와 ‘가슴’의 합을 꿰뚫어 본 브랜딩의 거인들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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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Liv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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