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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l 15. 2024

'왜'를 물으면 '답'이 나온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의 생각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시스템 1'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즉각적' 그리고 '자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시스템 2'는 긴 시간 고민하여 '의식적으로' 숙고하는 사고를 말한다.


언뜻 보면 시스템 2가 무조건적으로 좋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것은 '시스템 1'로 사고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몸무게에서 2% 밖에 차지하는 우리의 뇌가 20%의 에너지나 소비하는 것을 생각하면 '시스템 2'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만약 시스템 2로만 생각하면 점심시간 때쯤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의 시작점에서는 '시스템 2'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내 식으로 표현하면 '왜?'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일의 목적을 상기해야만 제대로 된 답이 나온다. 디자인을 맡겼을 때 그냥 이쁘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 1'에 가까운 생각이다. '왜 이쁘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고객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할 수 있다. '고객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이쁜 게 유일한 답인가?' 이 지점에서 비로소 창의성이 나오고 제대로 된 답이 나온다.  


오늘은 시스템 2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 보이는 세 가지를 공유해볼까 한다.


1. 세면대가 꼭 있어야 하는가?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 중 하나가 '크래커스'다. 제주도에만 있는 카페로 '대정'과 '한경'점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모든 게 빠지는 게 없다. 아니 모든 게 최고급이다. 커피맛도, 인테리어도 그리고 음악도.


내가 조금 더 자주 방문하는 곳은 크래커스 대정점이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어둡지만 편안한 분위기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세상근심을 훌훌 벗어던지게 된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화장실인지 눈치채기 힘들 정도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이 손을 씻는 곳이다. 대부분의 카페, 아니 모든 카페의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곳에는 세면대가 있다. 그 세면대가 이곳에는 없다. 물은 바닥으로 그냥 떨어진다. 물이 튀길 걱정은 없을까? 없다. 커다란 가림벽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면대를 없앰으로써 전혀 다른 감성을 선사한다.


2. 디자인은 꼭 이뻐야 하는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어느 정도 있지 않나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아름답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라는 것'만큼 스트레스받는 요청도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전문가의 미적 감각과 소비자의 미적 감각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순수예술을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중예술 더 나아가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이라면 소비자의 미적 감각을 유념해야 한다. 두 번째로 디자인을 하는 목적이 언제나 '아름다움'이 최우선은 아니라는 점이다. 광고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모두가 상향평준화된 미적 감각을 뽐낼 때는 '더 예쁘게'가 아니라 '다르게'가 주요하다. 그래야 이목을 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최근에 본 인스타그램 광고는 '어설픈(혹은 조악한) 디자인'으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목적을 달성한 디자인이었다.


3. 원두는 1회 분으로 팔 수 없는가?

요새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캡슐커피 판매가 증가하더니, 이제는 원두를 직접 구매해서 카페 버금가는 커피를 내려먹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입맛이라는 게 그렇지 않던가? 한 번 올라가면 내려가기 힘들다는 점. 다시 말해 비싼 맛에 익숙해지면 저렴한 맛이 맛없게 느껴진다. 커피 원두도 고급을 좇다 보면 한 봉지에 10만 원이 넘는 최고급 원두까지 가게 된다.


최고급 원두를 맛보고 싶으나 봉지 단위로 구매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1회분으로 원두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제주도 제주시에 위치한 '커피 파인더'다. "모두의 취향을 존중하여 한잔 분량의 원두를 판매합니다"라는 메시지로 최고급 게샤 원두를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고급 원두를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카페 입장에서는 원두를 판매함과 동시에 매장에 방문하는 손님에게도 커피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여러모로 상식을 벗어났기에 가능한 윈윈이다.


* 1인기업/자영업자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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