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통찰력'으로 번역되는 인사이트(insight)는 말 그대로 '내 안의(in)' '시각(sight)'을 의미한다. 모두가 사소하게 바라보는 무언가에서 사소하지 않은 무언가를 얻어내는 내 안의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상' 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시각을 유독 활성화시키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도쿄가 그렇다.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들이 추천한 도쿄의 장소에서 얻은 인사이트 세 가지를 공유해볼까 한다.
1. 과거식당의 모습을 한 미래식당
미래식당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상상되는가? 금속재질의 인테리어에 로봇이 서빙을 하고 '아마존 고(Amazon Go)'처럼 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자동으로 계산이 되는 극도로 효율적인 식당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도쿄에 위치한 미래식당은 이와 정반대였다.
일단 9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날로그(?)'적이고 소박하다는 말이다. 전체적으로 나무재질의 인테리어에 요리를 내어주는 프로세스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주문을 했을 때 음식이 완벽하게 세팅이 되어 나오는 게 아니라 준비되는 대로 하나씩 나온다. 봉지에 든 과자를 건네기도 한다. 밥은 손님이 먹을 만큼 퍼서 먹는다. 첫 방문인 손님은 900엔이고, 두 번째부터는 800엔이다. 이를 시스템으로 구별하는 게 아니라 작은 종이를 코팅한 할인쿠폰을 통해서 구별한다. 모든 게 미래식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과거식당처럼 보인다.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면 미래식당은 왜 미래식당일까? 미래식당이 유명해진 것은 고객으로서 느끼는 아날로그적 경험이 아니다. 손님이 50분 동안 가게 일을 도우면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신박한 사장님과 손님의 구조에 있다. 이곳에서 손님은 고정된 상수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변수다. 그에 따라 사장님과 손님의 관계도 무지갯빛을 띤다. 미래를 단순히 기술관점에서 본다면 이곳은 과거식당이지만, 미래를 관계관점에서 본다면 이곳은 미래식당이 맞다. 과거의 장점을 이어가면서 미래의 장점을 더한 미래식당이다.
2. 독립서점의 답은 플랫폼화
책을 읽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독립서점은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생기고 있다. 초기에는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과 같은 대형플랫폼에서 구하기 힘든 혹은 구할 수 없는 독립출판 서적을 다루는 독립서점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테마의 독립서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많은 독립서점이 생기는 만큼 많은 독립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다. 돈을 벌기 힘든 시장에 돈을 벌기 힘든 구조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장님들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매출을 위한 뚜렷한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쿄의 중고서점이 몰려있는 진보초에 그 답이 있었다. 셰어형 서점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Passage by ALL REVIEWS)'다.
진보초에 위치한 대부분의 서점이 촬영을 금지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는 적극적으로 촬영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서가마다 다양한 사람의 사진과 QR코드가 붙어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책장의 주인이다. 비유하자면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이고, 책장 주인은 스마트스토어 주인이다. 이를 '셰어형 서점'이라고 부른다. 윈윈 구조의 독립서점이라 할 수 있다. 독립서점의 경우 들쭉날쭉한 매출을 상쇄하는 안정적인 매출을 얻을 수 있음과 동시에 책장 주인들이 알아서 홍보를 하기에 홍보비용도 아낄 수 있다. 책장 주인도 마찬가지로 이득이다. 나만의 서점을 만들고 싶어도 비싼 임대료와 운영비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매달 적은 비용만 지불하면 나만의 독립서점을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일본에서 동네 자체가 서점으로 여겨지는 대표 서점거리 진보초에 말이다.
셰어형 서점은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만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대만에 위치한 몇몇 독립서점도 이러한 형태의 셰어형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셰어형 서점은 여러 형태로 변형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하여 책장마다 특정 인플루언서가 선정한 책을 팔고, 매출의 일부를 인플루언서에게 주는 구조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핵심은 독립서점을 플랫폼 화하는 것이다. 인사이트가 있는 독립서점 사장님에게는 많은 힌트가 되리라 생각한다.
3. 호텔은 '잠만 자는 곳'인가?
도쿄에서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동네가 시모키타자와다. 우리나라에 빗대어 말하면 망원동 같달까? 아기자기하면서 힙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곳에 2021년에 들어선 '머스타드 호텔'은 시모키타자와의 힙한 분위기를 배가 시키고 있다. 언뜻 보았을 때는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 호텔의 인테리어가 특별나지도 않고 방이 크지도 않다. 어찌 보면 깔끔하지만 평범하다. 잠만 자는 곳이라 생각했을 때 그리 가성비가 좋은 편도 아니다. 가장 싼 방이 1박에 10만 원 중후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법이 무엇일까? 이곳의 색다름은 그래서 힙함은 호텔을 '잠만 자는 곳'이라고 보지 않을 때 비인기 시작한다.
먼저 호텔 로비부터 힙하다. 공간이 힙한 게 아니라 공간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힙하다. 호텔 로비에 위치한 '사이드워크 커피'가 끌어당긴 사람들이다. 호텔 투숙객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면 관광객이 다수를 이룰 것이고, 그마저도 진득하게 머무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러모로 관광지의 느낌을 물씬 풍길 것이다. 이곳은 다르다.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는 카페가 위치해 있기에 힙한 동네주민들로 가득하다. 투숙객은 호텔에 들어설 때부터 지역의 힙한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
호텔과 연결된 일종의 쇼핑몰(?)에는 힙한 브랜드가 즐비하다. 카페/음식점/술집은 물론이고 향수 브랜드, 리빙 브랜드 등 힙한 가게와 브랜드가 선별되어 있어 호텔에서 멀리 나갈 필요도 없다. 비유하자면 더현대의 축소판이랄까? 오감이 즐겁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든 투숙객에게 LP 3장을 고르게 한다. 방마다 LP 플레이어가 있는데 투숙객이 고른 LP로 자신만의 분위기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투숙객에게 선택권을 줌으로써 백지 같은 공간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본에는 자신만의 '베개'를 고르게 하는 호텔이 있는데 이는 '잠'에 집중한 프로모션이다. 머스타드 호텔이 집중한 것은 '깨어있을 때'의 경험이다. 잠만 자는 호텔이 아니라 생활하는 호텔을 생각했기에 가능한 프로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