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상향평준화되는 시대에 이 말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는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스포츠 코치 짐 레이어의 조사에 따르면, 테니스 세계 랭킹 200위와 10위권 내 선수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차이는 경기 도중 잠깐씩 생기는 20초의 시간에 있었다. 상위 랭킹의 선수는 이 20초를 침착하고 일정하게 보내는 반면, 200위권 선수는 경기 결과에 따라 감정이 요동쳤다. 이 한 끗 차이가 세계 랭킹 10위와 200위를 가른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 프랑스는 어떤 ‘한 끗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세계적인 문화와 유구한 역사 그리고 음식이 물론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아주 작은 차이, 즉 한 끗 차이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발견한 프랑스의 한 끗 차이를 소개해볼까 한다.
1. 노트르담 대성당의 한 끗 차이
파리의 4대 명소를 꼽자면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 언덕,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이 아닐까 싶다. 이 장소들은 언제 방문해도 수많은 인파로 가득하다. 한때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창고로도 쓰였지만,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꼽추)> 출간 이후 '우리의 어머니'라는 뜻의 성당 이름처럼 파리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다.
안타깝게도 2019년 화재로 첨탑과 목조 지붕이 붕괴된 이후, 2024년 현재까지도 복원 공사 중이라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고 대부분의 구조가 가림막에 덮여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프랑스의 ‘한끗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대성당 맞은편에 설치된 계단식 구조물 파비용 노트르담(Pavillon Notre-Dame)이다. 파비용의 맨 위에 오르면 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 시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대성당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소개하는 전시와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화재라는 비극을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관광대국 프랑스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는 한끗 차이였다.
2. 어느 재즈바의 한 끗 차이
해외 여행을 가면 꼭 가보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서점과 재즈바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해당 국가 국민의 관심사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나는 공간이라 보고 듣는 재미가 크다.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는 두 서점을 들렀고, 한 재즈바를 방문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38Riv Jazz Club(이하 38Riv)이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38Riv는 예약 없이 가면 만석으로 입장이 불가했다. 시행착오 끝에 예약을 통해 방문할 수 있었고, 1층 입구에서 예약표를 보여주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꽤나 깊이 내려가는데, 예상과 달리 지하 1층에는 공연장이 없었다. 공연장은 지하 2층에 위치해 있었다. 마치 깊은 지하철역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하 2층에 도착하자 공연장이 눈앞에 바로 펼쳐졌다. 20여 명이 다닥다닥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 어두운 조명, 둥근 천장이 동굴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이 느낌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통신 두절’이었다. 전파가 잡히지 않아 ‘휴대폰의 전원을 끄거나 진동모드로 하라’는 안내멘트가 필요 없었다. 그곳에 모인 모두는 핸드폰 대신 공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디지털이 배제된 순수한 아날로그 공연을 만들어 주었다.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이 ‘아날로그 공간’이 바로 이곳의 한 끗 차이었다.
3. 파리 야경의 한 끗 차이
파리에서 머무는 마지막 밤에 ‘낭만 투어’라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차로 파리 근교를 돌아다니는 대신 가이드와 함께 파리 시내를 밤에 걸으며 파리의 야경을 즐기는 투어였다.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마지막 밤이 아쉬워 무엇으로든 채우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투어가 시작되자마자 예상과 달리 즐거웠다. 만족스러웠다.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도 좋았지만, 감동적인 것은 파리의 밤을 더욱 빛내주는 예술이었다. 투어 내내 가이드가 건넨 이어폰을 통해 각 명소에 어울리는 음악(특히 샹송)을 들으며, 해당 명소에서 촬영된 영화(예: 미드나잇 인 파리, 비포 선셋, 퐁뇌프의 연인) 이야기를 듣자 전혀 다른 파리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파리를 그대로 모방할 수는 있어도, 파리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이는 복제할 수 없는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 이 맥락을 이해하고 나니 거리의 쓰레기조차 다소 불친절한 파리지앵조차 아름답게 느껴졌다. 파리라는 도시는 ‘문화’가 만들어내는 적절한 ‘맥락’이 한 끗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