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약 두 달간 부산에 있는 패션 브랜드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부산의 패션 브랜드를 컨설팅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크다. 부산은 과거 패션의 메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전 세계신발 생산의 메카였다. “전 세계 나이키 70%는 한국에서 만든 것”이라는 광고를 할 정도로, 1980년대까지 부산은 신발 생산의 세계적인 중심지이자 대한민국 대표 패션 도시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독창적인 빈티지 패션 브랜드인 '파훼 (Pahway)'의 전담 컨설팅뿐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의 일반 컨설팅 교육을 포함하고 있다. 각 브랜드마다 뚜렷한 타깃과 차별화된 역량을 갖추고 있어, 컨설팅을 하는 입장에서도 기대감이 크다. 하루 9시간 넘게 회의와 논의를 이어가며 전력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부산에 왔다면 꼭 먹어야 하는 로컬 음식을 놓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부산 사람들이 추천한 찐 맛집을 찾아가 보았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두 곳을 소개해볼까 한다.
1. 수육이 주인공인 ‘평산옥’
나에게 수육은 그저 사이드 메뉴였다. 돼지국밥집이나 순대국밥집에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추가로 시키는 정도랄까? ‘수육을 먹으러 식당에 간다’는 생각 자체가 생소했다. 그런데 이 생각이 평산옥을 방문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평산옥은 부산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독특하게도 수육이 주인공인 맛집이다. 조연처럼 받쳐주는 메뉴는 국수와 열무국수뿐이다. 말하자면, 이곳은 오로지 수육을 위해 방문해야 하는 곳이다. 수육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왜 사람들이 이곳을 추천했는지 바로 알게 되었다. 돼지 잡내는 전혀 없었고, 마치 고급 초밥집의 생선처럼 부드럽고 깔끔하게 넘어가는 식감이었다. 다양한 소스와 곁들여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더욱 놀라운 건 가격이었다. 수육이 단돈 1만 원, 국수와 열무국수는 각각 3천 원, 4천 원밖에 하지 않았다. 거리와 가격, 맛 모든 면에서 부산에 왔다면 꼭 방문해야할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냉면 대신 밀면 ‘내호냉면’
부산하면 밀면이라고들 하지만, 지금껏 먹어본 밀면은 냉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부산에 가면 꼭 밀면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극찬하는 밀면 맛집이 있다고 해서 속는 셈 치고 방문해 보았다. 가게 이름에 ‘밀면’이 아니라 ‘냉면’이 들어간 특이한 밀면 맛집 내호냉면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뢰감이 급상승했다. 1대, 2대, 3대 사장님의 사진과 함께 “100년 맛집”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메뉴는 냉면류와 밀면류, 만두와 가오리회 등의 사이드 메뉴로 구성되어 있었다. 밀면만 먹으면 배고플까 싶어 만두도 추가했다.
밀면이 나오고 나서 첫 인상은 평범했지만 국물을 한 입 먹자 생각이 바뀌었다. 평양냉면과 일반냉면 사이 어딘가의 깊고 독특한 맛이었다. 면은 냉면보다 부드럽고 국수보다 단단해서 개인적으로 딱 적당한 식감이었다. 만두도 밀면과 훌륭하게 어우러졌다.
먹는 동안에는 “맛있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식당을 나와 버스를 타는 순간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도 부산에 오면 홀린 듯 다시 찾아갈 것 같은 맛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