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도시로 알려진 대전은 나에게 예스잼 도시다. 다만 성심당이나 엑스포와 같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맛집과 명소만 보고 가면 노잼일 수 있다. 생각보다 특별한 느낌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전은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진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도시다. 섬세한 관찰력을 장착해야 노잼이 아닌 예스잼이 보이기 시작한다.
KTX 대전역에서 내리면 대부분이 향하는 정문 대신 후문으로 나가보자. 그러면 100년 이상의 역사가 곳곳에 묻어나는 소제동이 나타난다. 이곳은 경주의 황리단길처럼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끌며 핫해진 곳이기도 하다(다만, 지역 주민과의 상생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오래된 역사와 새로운 감각이 만나 어디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온천으로만 알려진 유성구에는 대전 사람들이 즐겨 찾는 태평소국밥, 일당유성1호점 같은 전통의 맛집이 숨겨져 있다. 또한, 갑천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는 한강고수부지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파면 팔수록,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재미가 넘치는 대전이기에 이번 방문에서도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 특히 눈길을 끌었던 세 가지 재미를 공유해볼까 한다.
1. 계단을 내려오다 본 전단지
단풍나무가 아름답게 보이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케이크를 사고 투벅투벅 계단을 내려오던 중 무심코 오른편을 보았다. 내 눈에 들어온건 회색 담벼락에 알록달록한 발바닥 크기의 전단지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전단지였지만, ‘계단청소전문’이라는 글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장실 청소전문은 자주 봤지만, 계단청소전문은 생소했다. 청소분야를 쪼개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문성을 갖춘 것이다. 또한, 계단에서 가장 많이 필요한 청소 서비스를 계단에 붙여둔 센스까지. 사장님의 마케팅 감각에 소소한 박수를 보내게 되었다.
2. 오래된 것을 어떻게 보여줄까?
모든 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인다. 오래된 것도 마찬가지다. 나쁘게 보면 낡은 것이고, 좋게 보면 전통이 있는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오래된 것을 가치 있는 전통으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싱가포르의 TWG와 바샤커피가 그런 예이다. TWG는 로고에 ‘1837’이, 바샤커피는 ‘1910’이 적혀 있다. 두 브랜드 모두 오랜 전통을 지닌 것 같지만, 사실은 200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다. 특정 사건을 기념하는 숫자를 넣어 전통을 상징한 것이다. 비판받을 수 있는 기만적 마케팅일 수 있지만, 효과를 봤다. 두 브랜드를 만든 타하 부크딥의 핵심 전략이다.
TWG와 바샤커피와 같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이 있는 브랜드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전통을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숫자만큼이나 직관적인 것은 사진이다. 대전역 근처의 한 금은방이 그러했다. 오래된 흑백 사진 위에 “3대를 이어 60년을 함께했습니다”라는 문구는 별생각 없이 보아도 전통의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다만 폰트나 외벽 디자인을 조금 더 통일감 있게 연출했다면 더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3. 뾰족한 브랜드가 성공하면 그 다음은?
작은 브랜드는 뾰족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작은 기업을 위한 브랜딩 법칙 ZERO>(처음북스, 2024)에서 “타깃을 좁히면 살고, 넓히면 죽는다”고 강조했을 정도로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명심해야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쪼개야만 소비자에게 쉽게 인식되고, 전문성이 부각되며, 더 적은 광고비로 더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세분화된 시장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았다면, 다음 단계는 확장이다. 대전 가오동의 뽀뽀뽀 도너츠가 그러했다. 동네에서 맛집으로 알려져 있는 듯 보였고, 가게 안에는 ‘도너츠’ 외에도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뾰족한 전문성을 인정받은 이후에는, 관련 분야로 확장해도 브랜드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의 분야를 깊게 파다 보면 어느 순간 확장으로 나아가는 길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작은 가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