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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25. 2022

인생에는 고통과 권태밖에 없다?


<비행독서>라는 책을 같이 쓴 히가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캡선생이 예전에 말한 것 중에서 쇼펜하우어의 명언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는 말



어떤 의미에서 이 말이 그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 이 말은 넘어야만 하는 벽과 같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하기 힘든, 외면하려 해도 내 눈앞에 나타나곤 하는 너무나도 뼈아픈 진실이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노잼 시기'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무엇을 해도 재미 없고, 관심 가는 것도 없는 그러한 시기 말이다. 이것 쇼펜하우어가 말한 '권태'라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고통을 벗어나 있다 보면 이러한 권태를 마주하게 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고통의 부재는 행복'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행복이 아닌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다시금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일에 흥미가 생겨 그것에 몰두하다 보면 큰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나의 삶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다 보면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권태로울 때 느낄 수 없던 크나큰 고통이 우리의 삶을 덮치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다면 우리는 결국 체념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버릴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극복하고 싶었다. 높디높고 부서질 것 같지 않은 쇼펜하우어가 쌓은 벽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었다. 그가 틀렸다고! 그는 우울감에 사로잡혀 왜곡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았다고 말이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하나의 답을 찾게 되었다. 바로 '감사'라는 단어였다. 감사의 태도를 갖고 삶을 바라보니 쇼펜하우어의 벽 너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고통은 '우주가 우리에게 주는 알람(Alarm)', 그리고 권태는 '우주가 우리에게 주는 휴식'으로 달리 보이게 된 것이다. 


알람은 특정한 조건에 맞추어 저절로 경고음이 울리는 장치이다. 우주는 알람처럼 여러 가지 조건에 맞추어 우리에게 경고음 대신 고통이라는 신호를 준다. 개선해야 할 것이 있을 때,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해졌을 때, 그리고 고통 없는 삶에 감사함을 잃었을 때와 같이 말이다. 그래서 고통이 있을 때 우리는 이 알람이 어떠한 조건에 맞추어 울리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휴식은 말 그대로 하던 것을 멈추고 잠시 쉬는 것이다. 쉼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재미가 아닌 안락함과 회복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 휴식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잠시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주어진 휴식시간을 하나의 징벌처럼 여기는 듯했다. 늘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다. 사회가 주입한 일종의 관념이 현대인들이 이 휴식시간을 온전히 즐기기보다는 불안해하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끼게 만든 것 같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인생에서 이러한 휴식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 감사히 즐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과 상호작용하기에 이처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쇼펜하우어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인생은 알람과 휴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다




Photo by Andrik Langfiel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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