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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Nov 22. 2022

힘들 때 '본성'이 아닌 '이것'이 드러난다


결혼 전에 연인과 함께 여행 혹은 등산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그래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판단력은 만취한 사람의 판단력과 비슷하다. 일단 상대의 결점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콩깍지를 착용한 상태다. 그리고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포장된 행동까지 더해지니 연인에 대한 객관적 판단력은 0에 수렴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결혼할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주로 등산과 여행이 언급되고 있다. 두 활동 모두 체력 소모가 크고 돌발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즉 안정적이고 편안한 데이트에서는 보기 힘든 연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욱하는 모습, 이기적인 모습, 게으른 모습 등등.  


이렇게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본성'이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몸에 밴 행동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라고 본다.


권투 경기에서 코너에 몰린 선수가 상대방의 주먹을 능숙하게 피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본능적으로 주먹을 피하려 한다면 아마도 얼굴을 가리고 몸을 웅크리겠지만 그들은 잘 짜인 안무처럼 몸을 부드럽게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주먹을 흘려낸다. 심지어 몇몇 선수는 경기 후 그 당시 의식을 잃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습관은 무의식까지 닿은 듯 보인다. 수많은 시간의 훈련을 통해 몸에 밴 습관의 결과일 것이다.


출처: 네이버 카페 '앤디훅 이종격투기'



K-POP 강국답게 우리나라 아이돌도 프로 권투선수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따뜻한 상체와 자본주의 하체'로 잘 알려진 걸스데이 유라의 모습이다.




멤버가 자신의 발과 엉켜서 넘어진 작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녀의 하체는 습관대로 춤을 춘다. 이는 그녀가 타인을 배려하지 않거나 타인의 어려움을 본체만체하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수많은 시간 동안 반복한 행동이 몸에 배어 급박한 상황에서도 하체가 습관처럼 움직인 것이다.


마음이 여유롭고 체력도 충분하다면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이 가능하겠지만, 심신이 지칠 때는 무의식적인 말과 행동이 튀어나오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과 행동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사람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지속적으로 꾸며서 하게 되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빨리 지치게 된다. 면접을 보고 나면 진이 빠지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대다수 정치인들이 빨리 늙는 이유도)


이를 깨닫고부터 평소에 좋은 행동을 습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테면 언제 어디서나 앉았던 자리를 정리하는 것이다. 굳이 내가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도 양해를 구하는 한이 있어도 스스로 자리를 정리하곤 한다. 그러다 몇 달 전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져 빨리 자리를 떠야 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리 정리가 습관이 된 것이다.


이처럼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행동은 대부분 습관에서 비롯된다. 국민 MC 유재석이 파도 파도 미담인 이유는 그의 본성이 착해서라기보다는 친절이 몸에 배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가 과거에는 다소 건방지고 오만했다고 스스로도 자평하는 걸 보면, 이러한 친절이 몸에 밸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친절을 습관화하려 노력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이처럼 '좋은 사람'이라 불리는 사람은 때와 사람을 가려가며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이러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사람, 즉 좋은 행동이 습관이 된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습관이 외부로 표출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P.S. 이러한 좋은 습관을 기르려고 하는 것도 본성이라 한다면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Photo by Estúdio Bloo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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