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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Oct 16. 2021

과거를 물어봐 주세요

꽤 오랫동안 해외 생활을 했던 우리 부부는 아이 출산쯤 서울에 신혼집을 구했다. 집 근처 교회에 새 신자 등록도 했다. 하루는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부목사님이 환영 차원에서 우리 집에 심방을 왔다 (심방은 교회에서 신자들의 집에 방문해, 함께 짧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해주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도 간단한 소개를 했었지만 집 방문인만큼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질문도 하고 해외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어쩌다 돌아오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남편은 20대 중반 코이카 (한국 국제협력단) 봉사단으로 아프리카에 파견된 이후로 탄자니아와 우간다에 자리를 잡고 살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경우였다. 마침 교회에서 선교하는 국가도 탄자니아였고 남편과 사모님 둘 다 수학 교사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물 흐르듯 남편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내내 아이를 안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되면 나에게도 질문이 넘어올 것 같아서 태국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 어떻게 대답을 할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통 질문이 넘어오지 않았다.


'이쯤에서 내가 나서서 자기소개를 해볼까?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자, 그럼 오늘 말씀 하나 읽고 마무리하시죠!"

라고 말하는 목사님.


엇, 벌써요? 저.. 저는...?

말을 막 뱉으려고 벌린 입이 민망해서 얼른 닫아버렸다.


1분이라도 지체하면 폭탄 주차비라도 나올 것 마냥 속사포로 대화를 마무리하는 손님들. 이제 와서 자기소개부터 다시 시작하기엔 분위기가 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진정 나에겐 궁금한 점이 하나도 없었던 걸까? 여성 성도라고 내외하는 건가? 목사님은 그렇다 치고 옆에 있던 사모님은 뭐라도 하실 말이 없었던 걸까. "아기 키우느라 힘들지요?"라는 말이 그날 나에게 물었던 유일한 질문이었다.


내향성에 치우치는 나는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자기 PR 같은 것도 낯 부끄럽다. 그래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면 내 이야기도 조근조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날은 중간에 오디오가 끊기지 않았을 만큼 대화는 꽉 차게 이어졌지만 나의 입은 거의 열지 못했다. 다른 이들의 말에 추임새를 넣을 때와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 빼고는. 그 과묵한 시간의 자리가 내 자리인 듯 편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엄마가 되면 과거가 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 아니면 과거가 어떠했든 상관이 없는 것인가. 과거를 굳이 묻지 않는 경우는 주로 기구한 사연이 있거나, 범죄를 저질렀거나, 밝히기 싫은 가족사가 있을 때 대략 알면서도 들추지 않는 무언의 합의가 있을 때 아닌가?

 
나의 본업은 주부고, 정체성은 아기 엄마인데 나만 빼고 그 사실을 모두 받아들인 듯했다. 집에서 아기를 키운다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건 결코 아닌데, 원치 않는 가면을 억지로 씌워둔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골똘히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의아하네 싶다가 이내 씁쓸해졌다. 나쁜 의도가 있어서도 아니고, 날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사려 깊게 내 이야기를 물어봐 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면 가끔 글을 쓰는 상상을 한다. 그날도 상한 감정을 꾹꾹 욱여넣어 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생각했다. 제목도 떠올랐다. '엄마가 되니 나의 과거는 상관 없어졌다' 이런 느낌을 풍기는 제목을 달아야지. 남편과 , 어느 쪽이나 부모는 처음이고 부모가 되기 이전에 각자가 아끼는 공간, 저마다의 생활이 있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자 나의 과거묻히고 남들이 봐주는 나의 역할에는 '엄마'만이 남았다. 엄마가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었지만, 나의 정체성을 엄마로만 봐주길 원한 적은   번도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나도 귀한 나이지만, 과거의 나도, 내가 해왔던 일과 과거의 생활도 더없이 소중하다. 지난날의 반짝거리던 시간만 뜯어먹고사는 것 역시 그리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내가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은 나를 만들어주는 살과 같다.


그날, 결국 브런치에 뭔가 끄적이긴 했지만 '작가의 서랍'에만 고이 넣어두었다. 글로 정리되지 않는 복잡한 마음 때문이었다. 헝클어진 감정을 공개적으로 발행해버리면 낯이 뜨거워질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하는 마음속 질문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자기 검열로 스스로 입막음을 시키다니.


거의 2년이 지나고 회상해봐도 그때의 소외감과 섭섭함은 쉽게 털어지지 않는다. 다만, 내 감정이 어디서 올라온 건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거칠더라도 글로 꺼내 봤으면 좋았을 걸 싶다. 어쩌면 남편에게만 질문을 쏟아내던 사람들에게 '나도 과거에 꽤 괜찮은 삶을 살았어요!'라고 거들먹거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그게 두려웠는지도.


지금이라도 마음의 서랍을 꺼내봐서 다행이다. 다음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웃는 얼굴로 목사님께 여쭤볼 것이다. “제 이야기는 안 궁금하세요?” 안 궁금해하고 안 물어봐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담고만 있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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