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쿠나 Oct 15. 2021

실패의 기록도 쓸모가 있을까

디지털노마드 삽질의 기록

더 이상 누가 날 고용해 주기만을 기다릴 순 없을 것 같아.


한창 취업 서류를 뿌리던 2020년 초. 코로나19로 면접이 무기한 연기되기 시작했다. 지원한 직무에 두 명을 뽑겠다고 했던 한 공기업에서는 면접 하루 전 날 일정을 2주 연기하겠다더니 결국 채용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동안 영어 공인 점수라도 올려놓자 싶었지만 토익 시험이 생긴 이래 최초로 시험 일정 또한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서류부터 '광탈'한 적도 있었지만, 운 좋게 면접이라도 잡히면 나의 경력 공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고용당하는 입장에서 업무 공백 만으로 이미 핸디캡을 가졌건만 코로나19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마냥 대기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쯤이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서 소속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매드, 지식창업, 온라인 수익화, 사이드잡, 수동적 소득 등의 키워드가 본격적이고도 폭발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출근해야 할 직장도 없고, 육아보다 자아실현에 가슴이 뛰었던 나는 이 거대한 흐름이 반가웠다. 쓸려 내려가지 않고 파도를 타야겠다 마음먹었다.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위기를 반드시 기회로 바꿔보겠다며 누가 날 고용해주지 않을 거라면, 스스로 고용하여 디지털노마드맘이 되고 말겠다는 야망이 불타올랐다.


삽질의 서막


그렇게 시작된 나의 온라인 수익화 프로젝트는 스마트 스토어 개설을 시작으로 동남아 마켓 쇼피, 수익형 블로그, 제휴 마케팅, 전자책 만들기, 뉴스레터 기획, 디지털 파일 판매하기까지, 나는 초기 투자금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라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기 시작했다. 국제개발협력 업계에 크몽 같은 지식 공유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가치앤멀리'라는 이름을 짓고서 부푼 꿈을 꿨을 때는 아직 실패 고배를 덜 마셨을 때였다. 이 스토리의 결론이 '취업 준비하던 엄마, 사이드잡으로 월급보다 많이 벌다'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다 시간이  절실한 아기 엄마로서, 내가 유용할  있는 모든 시간을 걸고 고군분투했지만 현실은 끝없는 온라인 삽질로 이어졌다.


막 돌 지난 아이를 키우면서 온라인 사업도 같이 키워 보겠다고 새벽 5시 미라클 모닝과 자기 계발 루틴으로 하루를 열었다. 아이가 낮잠 자는 틈에 글을 쓰고, 또 육퇴 후에는 스마트 스토어 상세페이지를 작성하는 나에게는 어떠한 절박함이 있었다.


전업맘이 되기도 싫었고 워킹맘도 녹록지 않았다. 제3의 선택지도 존재하는 걸 알게 된 이상, 기회의 문이 열려있는 걸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에 할당된 육아량은 정해져 있고 내 시간은 더욱 제한되어있었다.


치킨값을 버는 게 아니라 월급을 벌고 싶었지만 전업맘에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내 성격이 문제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때때로 자괴감에 무너져도 난 무언가 해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은 이런 내가 썩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애써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수학교사인 그는 종종 나에게 성공할 확률과 수익을 얻는 궤도에 오를 때까지 대략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입해야 할 것 같은지 물었다. 최저 시급도 벌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게임을 하면서 굳이 잠까지 줄이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허덕이는 내가 그의 기준에서는 정말 삽질하는 것으로 보였을까.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성공 여부는 똑 떨어지는 수학 문제 풀 듯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배워가고 성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런 질문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바람 한 점에도 우수수 흔들리는 어린잎 마냥 초조한 마음이 더해졌다. 순진하게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성과가 나겠지 생각했던 나에게 그의 현실 자각 펀치는 때때로 나에게 다른 시야를 갖도록 도와주기도 했지만, 대체로 기가 죽게 만들었다.


그즈음부터 내가 남편으로부터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애기 잘 때 너도 좀 자지 그래’

였다.


남편은 모른다. 애기가 자는 동안만이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나를 돌보고,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전적으로 밀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 시간에 매달리지 않으면 나는 잠이 부족해서 예민한 것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워서 더 날 서고 뾰족해질 게 분명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일렁이는 파도도 먼 거리에서는 잔잔한 바다로 보이듯, 멀리서 살펴본 '온라인 사업의 세계'는 수영복만 갖춰 입고 뛰어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파도의 중심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수록, 나는 방향을 잃었고 물 공포증으로 패닉이 온 사람처럼 허우적 대기만 했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해외구매대행 스마트 스토어를 시작했을 땐, 괜찮은 물건 몇 개 골라서 올리면 사람들이 찾아줄 줄 알았다. 투자도 없이, 재고도 없이, 주문 들어오면 대신 주문서 쓰고 주소 입력하고 발송 처리만 하면 된다니 이게 웬 꿀인가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꿀단지’를 두고 경쟁하는 사람들은 많았고 나는 여러모로 뒤처졌다.


수익형 블로그를 시작했을 땐, 한 달간 1일 1포스팅만 마치면 대번에 검색 상위에 노출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 후 깨달은 사실은, 나에겐 매일같이 풀어내도 할 말이 많은 전문 분야가 없다는 것이었다. 잡다한 지식이라도 꾸준히만 한다면 블로그를 키울 수 있다고 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고 나의 블로그는 금세 생기를 잃었다. 집을 비워도 꾸준히 방문해 주는 사람들은 광고 블로거들 뿐이었다. 블로그만 봐도 내가 돈이 궁한 줄 알았는지, 부업 광고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는 늘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좋게 보면 안주하지 않고, 고인 물을 견디지 못하는.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온라인 세계에서 삽질만 하다가 온라인 건물주는커녕 먼지만 진탕 먹게 생길 판이었다. 그리고 정작 성과가 없는 것보다 날 괴롭게 만든 건, 내가 잘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독보적인 무언가를 못 찾겠는 것이었다.


여전히 디지털 노마드로써 수익화에 성공하는 미래는 아득해만 보인다. 하지만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아'를 외치며 계속해서 허우적 대는 이유가 있다. '내가 그거 해봤는데, 안돼~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하는 꼰대 같은 태도보다는 실패의 기록일지언정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남기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남은 인생 매사에 심드렁하게 살 바에야, 백 번 넘어져도 걸음마를 배우는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이전 02화 2년 전 면접관에게 하지 못한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