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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Oct 21. 2021

코로나 시대의 이민 1

터키 이민을 결정하게 된 과정

"하쿠나, 터키에 안탈리아라는 곳이 있는데 완전 파라다이스야. 우리 여기 가서 살까?


2020년 어느 날, 터키 휴양지 영상을 본 남편이 해맑게 물었다.


아무리 유튜브의 힘이 막강해졌다지만 영상 한편으로 가족의 미래가 달려있는 이민을 감행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1년 10월 현재, 나는 터키 지중해 도시 페티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블루라군으로 유명한 페티예 휴양해변, 욜루데니즈.


해외 이민, 정확히는 코로나19 시국에 터키 이민은 아무래도 큰 결정이었다. 더구나 터키에 취직을 한 것도 아니었고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는 사람 한 명 없었으니.


우리 부부가 이민을 단행하게 된 배경을 최대한 단순하게 나열해 본다면, 서울의 팍팍한 삶보다 느긋한 일상을 살고 싶었다. 매일 아침 미세 먼지 농도를 확인하며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가? 말아? 고민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나치게 높은 값이 매겨진 서울살이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여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산과 바다, 아름다운 자연이 우리 생활에 꽉 들어찬 풍경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두 돌 된 아이를 키우는 30대 부부가 코로나 시국에 일 때문도 아니고 연고도 없는 곳에 이민을 간다고 하면 대체로 의아한 반응이었다. 리스크가 다분한 게 첫 번 째 이유다. 끝이 묘연해 보이는 코로나19의 상황에 굳이 변수를 더한다니, 치기 어린 결정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를 조금 아는 지인들은, '너희들 답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지만 그건 우리가 결혼 전에 해외 생활을 많이 해서 으레 하는 말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아이가 있는 만큼 교육에 대해 걱정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선진국이 아닌 터키를 선택한 것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고, 그래도 정 간다면 국제학교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우선 우리는 아이가 꼭 선진국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가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을 누리고, 어린이의 시기를 행복하고 충만하게 보내는 게 더 높은 우선순위에 있었다. 물론 기회가 많은 땅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연 환경도 따라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우리는 그저 중간 정도의 자산을 가진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더구나 둘 중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서 이쪽이 저쪽 보다 행복의 확률이 높아질 지는, 마찬가지로 물음표였다.


또한 우리 아이를 어려서부터 경쟁 낭떠러지에 등 떠밀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어른들의 나쁜 모습을 더 빨리, 더 정교하게 닮아가는 듯하다. 문제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피하고 비난만 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리와 같은 결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의 부모들이 경쟁을 환호한다는 검고 흰 의견을 내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삶에 가닿기 위한 선택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최선의 대안을 택했 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성향이 좀 다른 편이다. 나는 신중한 쪽이고 남편은 추진력에 강하다. 그는 뭐 하나에 꽂히면 밀어붙이고 저질러 본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이민이었고. 앞서 적은 대로, 남편은 한 주식 유튜브 채널**의 은퇴 이민지 추천 영상을 보고 터키 지중해 휴양도시를 집요하게 파기 시작했다.


남편은 굵직한 것 하나를 보는 반면, 나는 디테일에 신경 쓰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뜻밖에 내가 걱정 담당이 되긴 했는데, 사실 나로서는 옆이나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전진하는 남편이 참 걱정될 때가 있다.


이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해외 부동산 취득과 관련하여 세금 문제와 현금을 옮기는 일에 가장 큰 신경을 썼고 나는 그 외의 것들을 준비하고 처리했다. 항공권을 구입하고 유아 동행 관련 규정을 찾는 등의 세세한 잡무로부터 시작하여 이삿짐 처분할 때 어떤 짐을 버리고 어떤 것은 가져가고 나머지는 '당근' 할지를 정하고 실행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사 가기 전 중고물품 파는 일은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또, 처음 비행기를 타는 아이를 위해 어떤 준비물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며, 귀가 먹먹해지면 먹일 무설탕 오가닉 막대사탕을 주문해 놓는다 거나 여름 날씨가 대부분일 페티예에 도착하면 입힐 아기 여름 속옷을 준비한다거나.


간소화가 인생의 주요한 가치 중 하나인 남편에게 나의 앞선 사소한 준비들이 비효율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대부분의 일을 너무 단순하게 처리하는 남편을 보며 서로 닿지 못할 평행선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참을 인'을 서로 더 많이 새기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여하튼 이런 다름에도, 각자 소질 있는 역할을 맡고 구멍을 내지 않았으니 결국은 떠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패러글라이딩의 성지 페티예. 둘이 따로.
또 같이.




*안탈리아 주 옆에 있는 도시
**문제의(?) 유튜브 영상 <경제적 자유, 10년은 앞당기는 법> https://www.youtube.com/watch?v=Iup_RS5J_NA&t=1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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