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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Oct 21. 2021

코로나 시대의 이민 2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구독자님 모두 경제적 자유를 꿈꾸실 텐데, 이걸 10년 정도 앞당길 수 있는 묘수가 있습니다. 한국보다 물가가 싼 곳으로 이민을 가는 거죠.


우리 부부가 터키 이민을 오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유튜브 영상 설명에 적힌 글이다.




우리가 터키로 온 과정을 돌아보면 모든 걸 완벽하게 향후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감행하는 이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은 생활비로 질 높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터키 휴양지 도시 정보를 얻은 후, 고민에서부터 합의에 이르기까지 3개월 정도밖에 안 걸렸으니 상당히 빠른 결정인 셈이다.


그럼에도 생각이 많은 나이기에 이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보기보다 살 만하지 않은 곳일 수도 있고, 도무지 우리와 맞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고, 아이를 적응시키기 힘들 수도 있고, 남편의 소득이 끊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초반에 나를 가장 고민하게 만든 건, 나의 커리어였다. 지금 터키로 이민을 간다는 건, 동시에 더 이상 나의 커리어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확실성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행동에 제동을 걸게 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굳이 소환해 상상 속 문제 씨앗을 무럭무럭 키워 나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두렵기도 한 마음은 나만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이민에 대해 한창 고민하던 어느 날, 불확실성은 차치하고 내가 꼭 한국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한국에서의 취업을 붙잡고 있는 게 가장 컸다.

한편, 취업 후의 삶을 떠올려본다면 준비에서 통근까지 최소 12시간을 소비한 후 시들시들한 파김치처럼 집에 돌아올 것이다. 그 후에는 또 아이와 놀고 씻기고 재우고 겨우 머리를 대겠지. 만성 피로에도 주중에 아이와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한 죄책감에 주말에도 복작복작한 서울 곳곳을 다니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러자고 서울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게 맞나? 그보다,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지불할 만한 보람 있는 일자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못해서 도피 이민을 가려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은 적도 있다. 계기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가 되었든 저기가 되었든 긍정의 방향으로 키를 옮기고 싶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새로운 기회를 맞아들이고 싶다면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한다. 관성을 움켜쥐고 있어서야 변화를 향해 손을 뻗칠 수 없다.





남편 홀로 사전 답사를 다녀온 2021년 2월은, 전 지구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이 막 시작했던 때였다. 사방에 도사리는 불확실성을 뚫고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추진력을 증명해냈다. 하지만 둘 다 가보지도 않은 나라에 이민을 훌쩍 떠날 수는 없었다. 사전답사는 리스크를 줄이려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어떤 이에게는 지금 이 시기에 이민이라니, 경솔한 결정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도 나름의 성공적 이주를 위해 흔들릴 때마다 기억하기로 한 기준이 있었다.



첫째, 이민 생활이  꽃길은 아닐  있다는 . 서울 살이보다  나은 생활을 바라며 떠나지만, 모든 면이  좋을 수는 없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든, 기쁜 순간이 있는 만큼 막연하고 고생스러운 시간들도 있을 것이다.


둘째, 터키에서의 생활이 우리 생각과 많이 다르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떠날 것.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작은 부딪힘에도 크게 부서질 수 있을 테니까.


셋째,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선택하기로 한 이상, 다른 사람들이 닦아 놓은 길과 비교하지 말 것. 살아가는 방식이 꼭 직선을 잇댄 세모나 네모일 필요는 없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고 우리는 새로운 도형을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우리는 선택했고 실행했고 그에 대한 책임도 기꺼이 지기로 했다.


터키 아님 말고.

하나도 잃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터키 이민이 기대만큼 좋지 않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정작 돌아올 일이 생기면 나의 선택이 부끄러워질 수도 있겠지만. 금의환향은 못하더라도, ‘생각과 달라서 얼른 접고 들어왔어’라고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게, 맞지 않는 곳에서 끙끙 앓는 것보다 나을 테다. 어쨌거나 내 선택, 우리의 인생이니까. 성공해도 실패해도 혼자가 아닌 함께 책임을 나눠지는 것이니 괜찮다. 소심한 B형인 내가 혼자였으면 못할 일을, 이러쿵저러쿵 해도 곁에 있는 남편을 믿고 저질러 보기로 했다.


페티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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