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페티예의 여름은 확실히 졌다고 생각했지만 지는 철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아 보려고 욜루데니즈 해변에 나섰다. 한낮에 내리꽂던 볕은 뒷목을 잠시 달궜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금세 기세를 잃었다. 한 번 40도의 고개를 넘더니 좀처럼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던 지중해의 여름. 질끈 감은 눈으로 딱 두 달만 참자 했는데 지나고 나니 따스함으로 기억되는 건, 역시 내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이겠지.
바닷물에 발을 담그니 팔에 오소소 소름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물이 얕은 쪽은 아직 들어갈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추워도 조금만 버텨보자 욕심을 부리며 몸을 담갔다.
지그시 바다에 등을 대고 부유하고 있으려니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건지, 하늘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뽀얗고 몽글몽글한 구름 저편에서 작은 점이 한두 개 생기더니 점점 커진다. 하늘을 향해 어떤 각도로 카메라를 들어도, 색색의 낙하산이 밟히지 않는 자리가 없다. 페티예의 10월은 패러글라이딩이 제철인가 보다.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몇 시간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바람의 저항과 중력의 힘겨루기 사이에서 유영하는 낙하산은 찰나와 같이 지나갈 이 시간을 영원처럼 느끼고 누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자연은 한없이 너그러워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에서 조금이라도 불행한 생각을 하다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페티예는 휴양 도시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광업에 몸 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관광객이 여름에 방문하기 때문에 페티예는 여름에 생기가 도는 곳이다. 더위가 꺾이는 9월 말이 되면 가게, 식당, 호텔들이 서서히 여름 장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산책하며 자주 지나던 식당들 앞에 내년 여름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말이 하나둘 씩 걸리면 겨울이 오고 있구나 생각하면 된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카페도 시기를 놓쳐버리면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아무리 손님이 넘쳐나던 레스토랑도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문을 걸어 잠근다. 페티예 사람들은 쉬어가는 계절을 붙잡고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한수희 작가님은 <온전히 나답게> 개정판에서 자신이 쓴 책을 다시 읽어보니,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지금의 작가님에게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고 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책이 유효한 것을 이렇게 적었다.
'어쨌든 나는 한 시기를 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써야만 했다. 그때의 나는 내 안에 제멋대로 뒤엉킨 채 쌓여있던 모호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고 햇볕에 바짝 말린 뒤 가지런히 정리해야만 했다. 그것들을 좀 더 확실하고 객관적인 실체로 바꾸어야만 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시기를 정리할 시간이. 이 이야기들을 쓰고 난 후 나는 비로소 그 시기를 통과할 수 있었다.'
2019년 출산 후로부터 여러 계절이 지나 터키 페티예에 이민 오기까지, 나는 자주 길을 잃었고 너머에 무엇이 열릴지 모를 여러 개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페티예에 살면서도 가끔 혼자만의 동굴에 기어 들어가기도 했다.
지나온 날을 돌아보니, 나의 이야기가 너무 듬성듬성해 보여서 드러내기에 주저되기도 했다. 하지만 출산 후 방황했던 시기를 한번쯤 정리해야, 다음 시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페티예 사람들이 여름이 지나면 연연하지 않고 다음 계절을 기다리듯, 나도 인생의 다음 시기를 기대해보려고 한다. 내년 여름에는 아무쪼록 소박하지만 충만한 기쁨을 주는 페티예에서 지금보다 조금은 더 안정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있길.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든, 또 새로운 일을 벌리고 있든 나의 마음에 안부를 물어봐주는 여유가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