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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an 28. 2018

혼자만의 시간

나를 이해하는 시간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 그중에서 우리가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시간은 몇 시간이나 될까. 학교, 직장, 친구, 가족, 연인. 주변 사람들과 떨어져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관계에서 비롯되는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생활의 문제는 잊고 일상의 잡음은 끄고 내면을 직시하면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망에서 벗어나 직책과 호칭은 떼어내고 본래의 내 이름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하루를 마무리하고 때로는 하루를 여는 혼자만의 시간은 과연 24시간 중에 몇 시간일까.
  
 관계 속에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우리는 행복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관계 맺는 일은 필연적으로 피로감을 동반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교성이나 사회성과는 별개로 타인과 교감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감정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이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고 상황에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는 일에도 적잖은 집중력이 요구된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서는 공적인 관계의 경우 소통과 상황에 맞는 대처를 위한 매뉴얼을 숙지해야 하는 책임까지 따른다. 이렇듯 우리는 관계를 맺고 관계를 유지하는 행위로 인해 지치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여 있음에도 외롭고 공허할 때.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어느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반복되다 보면 또 다른 유형의 스트레스가 된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나 사회생활에서 비롯되는 실망감은 분명 사람을 통해서 회복되고 보완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언제나 타인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나를 달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특히 관계로 인한 피로감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한 회복이 큰 도움이 된다. 혼자가 될 때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있어도 나를 100% 알고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내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어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언제나 본인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진실과 마주한다. 타인에게는 결코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치부와 부끄러운 민낯도 적나라하게 목격한다. 내면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문을 열어 보여줄 만큼 아름답지 않다. 누구나 그렇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보다 유난히 겉모습에 신경을 쓰는 건 내면의 모습을 뜻대로 포장하고 꾸밀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의 속내를 천천히 확인하면서 마음은 안정을 찾아간다. 블록처럼 무너져 내린 자존감을 엉성하게나마 쌓아 올리기도 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구겨지고 뒤틀린 누군가에 대한 편견을 어설프게나마 바로잡기도 한다. 끓어 넘치던 분노의 세기를 조절하기도 하고, 인정하기 싫었던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여 일방적이었던 스코어를 정정하기도 한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느라 팽팽해져 있던 긴장의 끈을 풀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 자유로움도 느낀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면을 정리하면서 바쁜 일상에 잃어버리고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본래의 내 모습을 찾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은 쉽게 여유와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면 시간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해야 할 것들 그리고 생각하던 것들을 잊고 오로지 내가 중심이 되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 시간이든 10분이든 시간의 총량은 상관없다. 관계의 피로감을 씻고 생활이 주는 심리적인 무게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만 가능하다면 자주 할 수만 있다면 매일 그런 독립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본래의 내 모습을 잊지 않도록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자기애적인 성찰의 시간이 바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해 보인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는 노력도 정말 중요하지만 반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인간은 함께이기 이전에 혼자다. 함께 잘 살아가려면 보다 먼저 혼자인 개인이 심리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도 물리적인 공간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의무와 책임 그리고 사회적인 관계와 관련된 정보들로 내면의 공간이 가득 차게 되면 삶은 갑갑해지고 일상은 무기력해진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영역인 ‘자신의 방’만큼은 남겨두어야 한다. 지칠 때는 그곳으로 들어가 잊고 살았던 초심도 찾고 상처 입은 내면도 다독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답게 생각하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
  
 집에서 혼자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영화를 보고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거나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바깥 풍경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 목적지와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훌쩍 떠나보는 일. 아무것도 아닌 시간일지는 몰라도 이것만으로도 갑갑한 삶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내가 나를 위해 쓰는 시간.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나에게만 허락되는 시간. 그런 혼자만의 시간이 쉼 없이 돌아가는 바쁜 일상과 치열한 생활에 쉼표가 된다. 삶에는 그런 숨 쉴 여유가 있어야만 사람이 사람답게 제대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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