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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Feb 22. 2018

유행이 지배하는 사회

쫓아가느라 바쁘고 따라가느라 힘들다

광화문에서 만나자는 친한 동생의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교보문고를 찾았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매장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먼저 온 나는 기다리는 동안 책을 좀 읽기로 했다. 한주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탓인지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일본문학코너에 닿았다. 책장 구석에서 처음 보는 하루키의 단편집을 발견한 나는 목차를 보고 맘에 드는 제목의 단편을 골랐다. 제목만큼이나 소설의 첫 문장 역시 좋았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책을 들고 계산대에 앞에 섰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나는 동생과 만났고 손에 든 책을 본 동생은 자기도 책을 한 권 사고 싶다며 골라달라는 말을 했다. 
  
 동생과 함께 책을 고르며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있는 몇몇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서적 코너는 책을 고르는 젊은 여성들로 발 디딜 틈 없었고 취미생활과 관련된 섹션 역시 2,30대들로 가득했다. 젊은 세대에서 여행과 취미활동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욜로(YOLO)의 영향이 컸다. 한 번뿐인 인생, 나를 위해 즐기자(You only live once)는 밝고 희망찬 느낌을 주는 욜로를 보면 나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불안감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욜로의 마인드는 즐겁고 유쾌하지만 이러한 트렌드를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단면은 꽤나 어둡다. 
  
 기성세대를 대체하고 장차 이 나라의 사회경제적 중심이 될 젊은 세대가 장기적인 안목의 인생설계와 미래에 대한 투자 대신 눈앞의 즐거움을 쫓는 상황. 노력이 성공을 보증하는 확실한 수단이었던 시절이 가고 찾아온 불안의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에게 산다는 건 해답 없는 문제를 푸는 일과 같다. 욜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려고 아등바등하는 동안 쌓인 답답함에 반응하며 급격하게 2,30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확실한 현실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불안정한 상황은 언제 좋아질지 알 수 없는 지금.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를 말하는 젊은이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어두운 사회의 현실이 만든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그러나 갑갑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한 욜로라는 트렌드 역시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욜로 라이프를 즐기는 2,30대의 가슴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답답함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지만 욜로와 관련된 콘텐츠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꽤나 두둑한 수익을 거둘 것 같다. 갑자기 등장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의 소확행 역시 마찬가지다.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들 덕에 한몫 단단히 챙기게 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승자다. 트렌드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현실을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트렌드에 반응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수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트렌드는 사람을 모은다.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남들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 때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방송가와 출판계를 그야말로 강타했던 적이 있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성공신화로 포장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잠을 줄여가며 아침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강남 학원가 영어학원의 새벽반을 가득 채운 직장인들이나 해뜨기도 전에 약속한 듯 공원을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 트렌드가 얼마나 지속될지 궁금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나아가고 다른 이들보다 더 먼저 선점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기. 빨리빨리를 넘어 좀 더 빠르게를 외치던 이 트렌드가 지나가자 거짓말처럼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느림의 미학을 주장하는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은 무리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지속된 유행을 가장한 채찍질로 인해 사람들은 질려버렸다. 그러자 생산성만을 강조하던 우리 사회는 갑자기 목소리를 바꿔 이제는 삶의 질과 만족감을 쫓으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부터 OECD 평균에 비해 한국인들의 수면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노동시간은 지나치게 많다는 자료와 연구결과가 연일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 줄 수 있는 상업적인 콘텐츠들은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해본 적도 없는 캠핑을 떠났던 많은 사람들. 감성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대형서점 곳곳에 높게 쌓여있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책들. 아픈 삶의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더니 사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홍보했던 연예인들까지.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은 정말 많았겠지만 정작 힐링이라는 트렌드로 위로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트렌드 속에는 언제나 소비가 조용히 숨어있었다. 힐링이라는 코드가 전국민적으로 유행했을 때 이익을 본 건 캠핑용품을 파는 업체나 에세이를 찍어낸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감성과 지친 마음을 적당히 어루만지는 분위기의 콘텐츠를 내놓았던 미디어 산업 역시 이때 크게 성장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이 추억과 감성 그리고 여유로움 같은 힐링 코드를 들고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트렌드를 쫓지만 트렌드를 쫓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계속해서 새로운 트렌드를 쫓아가야 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중심을 잃어버린다. 사회는 과열되기도 하고 또 차갑게 식기도 한다. 파도가 치는 것처럼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내려온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로써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반복된다. 트렌드는 그 주기 사이에 교묘하게 스며들면서 독립적인 개개인들의 사고방식을 획일화된 하나의 메시지로 묶어버린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지쳤으니 조금은 쉬어가자. 청춘은 힘들지만 내일이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사랑하자. 내 인생은 나의 것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같은 당연한 메시지들이 사회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슬로건으로 변질될 때 트렌드가 발생한다. 
  
 이해받고 위로받아야 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트렌드에 의해 이용당한다.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인정받는 걸 따라 하면서 행복감이 아닌 소속감을 느낀다. 맞는지 틀리는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때 사실 세상의 지식과 우리가 받아온 교육은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살면서 큰 결정은 내려야할 때 도움이 되는 건 살아온 경험과 거기서 비롯된 자신의 가치관 두 가지뿐이다. 갑작스레 등장한 이제까지 본 적도 없는 트렌드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그것들이 때론 나를 채찍질하고 재촉하며 위로를 가장한 손길을 건네도 받아줄 필요는 없다. 넘어지고 실패하면서 배우더라도 내가 직접 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 경험도 쌓이고 삶도 조금씩 변화한다. 중심을 잃지 말자. 나다움을 빼앗기지 말자. 또렷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킬 때 사람들은 그것을 ‘스타일’이라 부른다. 트렌드는 새로운 트렌드에 대체되어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그대로 남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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