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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an 05. 2017

내가 나를 이해하는 순간

오래된 노래 속에서 오래 전의 나를 만나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자주 음악을 듣는 편이다. 주로 한 곡만 반복해서 듣지만 오늘은 랜덤으로 재생되는 트랙을 선택했다.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가수들의 노래를 듣던 중 나는 정말 반가운 노래 한 곡에 마음을 빼앗겼다. 마야가 부른 ‘나를 외치다’는 10년 전 내가 스무 살 때 들었던 노래였다. 기타 연주로 시작되는 인트로를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가사와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동시에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있었던 기억 속의 이미지도 또렷한 색감을 되찾으면서 선명해졌다. 철없고 생각 없었던 10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니 멋쩍고 부끄러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불안함에 많은 시간 동안 방황했던 스무 살의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다.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꿈이나 이상이라면 그 아래 일상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버팀목은 글과 노래 같은 작은 위로들이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고 뜻하지 않은 재수로 인해 스무 살의 나는 언제나 조급하고 불안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기억은 시간에 의해 언제나 희석되므로 과거의 내가 느낀 고통의 깊이는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을 것이다. 어린 나는 남들과 다른 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음악을 듣고 여러 권의 책을 보며 위로를 갈구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듣고 읽고 또 기도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았고 내 삶에 뚜렷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생활은 불안하고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심심찮게 치르며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내 삶과 목표에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스무 살의 내가 겪은 불안과 방황을 통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자.’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품었던 삶의 목표들을 서른이 되어 하나 둘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불의에 타협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자. 원하는 일을 찾은 다음에는 그 분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자. 착하고 강한 사람이 되자. 정당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자. 어렸던 내가 세상을 물정을 너무나 몰랐구나 싶다가도 지금의 내가 원하는 삶과 비교해보면 닮은 점도 있어 새삼스레 놀라웠다.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세상이 변한 만큼 나도 정말 많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바보 같은 사람이다. 다만 그때의 철없는 바보 같음이 있었기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꿈을 좇아 살아가는 당당한 바보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지만 오래된 노래는 언제나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과 분위기를 담고 있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때와 똑같은 감동을 주는 멜로디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 또 10년이 흘러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이 노래를 들을 때는 어떤 마음일까. 서른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더 아득하게 멀어진 스무 살의 청춘을 떠올릴 미래의 나. 한 가지 바란다면 마흔이 되어서도 서른의 나를 돌아보며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른 살의 내가 스무 살의 방황과 불안을 이해한 것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흔의 나는 꿈을 지금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쫓아가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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