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산을 오르기 전에 늘 짐을 싼다. 동네 뒷산이든 각오가 필요한 높은 산이든 준비물은 비슷하다. 등반 난이도에 따라 배낭의 무게는 달라지지만 철저하게 준비하는 과정은 동일하다. 아무리 가벼운 산행이라도 꼭 필요한 물건들이 있다. 구급키트와 손전등 그리고 지도는 빼놓을 수 없다. 나침반 기능이 있는 전자시계도 착용한다.
도시 주변의 낮은 산을 운동화만 신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한 손에 핸드폰 들고 느긋하게 올라가도 문제는 없다. 등산로도 잘 만들어져 있고 쉼터나 안내판도 잘 구비되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늘 안전용품을 백팩에 넣고 산을 오른다.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이 산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들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때론 안일함을 부른 다는 사실을 나는 산에서 배웠다. 매일 다니던 동네 등산로를 내려오다 넘어져 다친 적이 있다. 밥 먹고 다녀오는 산책이나 다름없었던 코스라 핸드폰만 달랑 들고 올라갔었다. 바위에 쓸린 종아리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오자 난감했다. 겉옷을 벗어서 다리에 묶고 지혈을 한 뒤에 겨우 바위에 앉았다. 집까지 내려갈 생각을 하니 친숙했던 산길이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졌다.
아픈 다리를 끌고 가까스로 산에서 내려온 그날 이후로 안전을 신경 쓰는 습관이 생겼다. 미리 준비하면 실수를 막을 수 있고 먼저 대비하면 실책을 허용하지 않아도 된다. 경험을 통해 얻은 안전의 중요성은 습관이 되어 나를 지켜주고 있다. 머리는 잊어도 몸은 끝까지 기억한다. 다리의 희미한 흉터가 품고 있는 기억은 말해준다.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철저한 준비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