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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21. 2023

남은 남이다 내가 아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고양이들은 박스를 좋아한다. 크기를 가리지 않고 박스라면 사족을 못쓴다. 택배박스부터 과자용가까지 눈에 보이면 일단 발부터 집어넣고 본다. 자기 몸에 꼭 맞는 박스를 가장 좋아하지만 작아도 개의치 않는다. 그냥 양발을 쑤셔 넣는다. 뒷다리가 밖으로 나오거나 꼬리가 튀어나와도 상관없다. 고양이는 맞는 박스를 찾는 것이 아니다. 박스에 자기 몸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늘 적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틀에 맞춰서 자세를 고친다. 유동성 있는 액체처럼 아주 유연하게 자신의 몸을 변화시킨다. 사람도 비슷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함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앞날은 예측할 수 없고 미래는 예상할 수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은 걱정을 불러온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걱정에 민감한 편이다. 남과 비교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늘 수많은 일들을 걱정한다. 세상의 기준과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는 경직된 사고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삶의 기준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외부에 있다. 이전의 나보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잘살아야 한다는 환상을 쫓는다. 입을 열면 늘 남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남들만큼 누리기 위해 경쟁한다. 그러나 열정은 사람이 가진 그릇의 크기에 비례한다.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하면 열정은 현실 앞에 빠르게 소진된다. 동력을 잃고 나면 그때부터는 불안과 걱정만 남는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집단을 떠나 고립된 삶을 영위할 이유는 없다. 다만 사회가 말하는 모범답안과 사람들이 인정하는 정답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다. 틀 안에 나를 맞추려면 많은 것들을 잘라내야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모범답안은 등급이 존재한다. 자신의 등급을 계산하는 순간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져 나간다. 등급은 곧 계급이다.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지속적으로 고통받게 된다. 숫자 몇 개가 삶을 평가할 수도 있지만 자진해서 평가받을 이유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등급으로 평가받으면서도 틀 속으로 들어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급 속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안정감은 비교우위를 통해서 얻는 일시적인 합리화에 불과하다.


 계급은 타인에 의해서 언제든지 평가절하 당할  있다.  잘난 사람의  마디에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진다.   숫자에 지배당하면 벗어날  없다.  밖으로 나가면 걱정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안에서 계급에 속해 있으면 알량한 안정감을 느낄  있다. 그리고 나보다 못난 사람을 공격하고 비난하면서 안도감을 충족할 수도 있다. 이런 삶은 야생의 먹이사슬과 다를  없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정의할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본능과 유전적인 태생의 한계를 거부하고 삶을 선택하고 인생을 재편할  있다. 그것이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이다. 그러나  속에 나를 맞추면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계급피라미드가 만든 먹이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의 기준은 언제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존재해야만 한다. 타인과 나는 다르다. 비교를 통해 얻는 만족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남을 깎아내리면서 얻는 기쁨은 삶의 만족이 될 수 없다. 등급이 만드는 계급 속에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계급의 피라미드는 꼭대기 최상층에 위치한 자만이 하늘을 보고 설 수 있는 구조다. 나머지는 모두 그 발아래 엎드려야 한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피라미드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1등급으로 불리는 구간조차 들여다보면 수석과 말석이 있다. 최상층에 있는 이들 간에도 출신과 배경으로 우열이 나뉜다. 모든 것을 가진 승리자가 아니라면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남은 남이다.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방식이다. 나와 남은 배경과 조건이 다르고 성격과 선택도 다르다. 등급이라는 결과만 놓고 비교하는 것은 과정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판단이다. 결과에는 가치가 있지만 과정에는 의미가 있다. 비교를 일삼는 사람일수록 본인이 살아온 삶의 의미와 체험이 만든 경험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존감이 낮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본인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행동을 변화시키면 사람은 성장한다. 그러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인간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사람을 망치는 원인은 대부분 자신에게 있다.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본인이다. 틀 속에 갇혀서 나오지 않는 것은 자의적인 선택이다. 삶의 유연함을 되찾고 싶다면 더 이상 타인이 아니라 나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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