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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Feb 01. 2024

직장인의 주인의식

우리가 회사에서 만나는 괴팍한 사람들

 직장인은 동료들에게  끼치지 않고 1인분만 제대로 하면 받는 월급 이상 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도만 해줘도 부족함이 없는 우수사원이다. 성실히 일하면서  내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다 보면 제안을 받을 때가 있다. 본래 업무 외에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시간도 따로 할애해야 하는 일이라 난색을 표하면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신입일    들었던 주인의식이라는 단어는 책임감을 의미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나면 단어의 의미는 달라진다. 회사를 위해 너의 성의와 진심을 증명한다면 좋은 보상이 기다린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말은 좋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인의식을 들먹이는 자들은 조건을 내건다. 먼저 일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으라는 식의 제안이 대부분이다. 가만히 앉아서 번거로운 일을 떠맡을 사람은 없다.


 거절의사를 내비치면 주인의식은 그때부터 묘한 협박과 절묘한 압박의 뉘앙스를 띄게 된다. 부서나 회사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불안을 자극하고  좋은 자리와 대우를 거론하면서 환상을 심어준다. 물론 계약서를 쓰는 일은 없다. 당사자가 받아들이면 실무자들끼리는 결제를 돌린다. 약속은 구두지만 일의 책임소재는 분명하게 남기는 이상한 방식이다.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지만 실상은 충실하게 일하고 마무리지을 노예가 필요한 것뿐이다.


 본인 업무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장인이 회사를 위해 발휘할  있는 최대의 열정은 본업에 충실한 것뿐이다. 회사가 일을 맡긴다는 말은 나를 믿고 있어서다 아니다.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뒤탈 없이 마무리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능력자들을 제쳐두고 내게 제안이 왔다면  거절하고 빠져나갈 만큼 귀찮은 일이라는 의미다. 그런 일은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인정받지도 못할뿐더러 적절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주인의식을 입에 올리면서 부탁하고 제안하지만 대우는 머슴이나 다름없다. 어떤 주인이  흘리고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할까? 주인의식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 결국 무한한 희생과 대가 없는 열정을 바랄 뿐이다. 보상을 약속하지만 담당자   바뀌고 부서가 개편되면 전부 없던 일이 된다. 노력과 열정은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 방향이 일치해야 제대로  성과가 돌아온다. 열심히 일한 경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용당하면 고생만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인내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따로 있고 있고 버티면 보상이 주어지는  역시 한정되어 있다. 주인의식을 들먹이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는 저열한 농간에 불과하다. 이용당하고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은 죄가 없다.  속이는 놈이 문제다. 이번만 참으라는 말이나 1년만 견디면  좋아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회사는 사적인 관계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문서와 계약으로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공적인 사회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활동은 인정되지 않는다. 나중이나 다음은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월급쟁이는 애초에 오너도 아니고 대주주도 아니다. 하물며 고액연봉을 받는 이사회 멤버도 아니다. 일한 만큼 월급을 가져가는 임금노동자일 뿐이다. 주인에 준하는 대우나 권한을 가진 적도 없는 평범한 직원에게 주인의식은 대가 없이 일하라는 낙인에 불과하다.


   찍히면 온갖 고생은 다해야 하는 1등급 노예라는 낙인이다. 정작 주인의식을 들먹이는 사람은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회사를 위해 희생할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전부다. 정당하게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은 상식이다.   성인끼리 약속했다면 이행하는 것은 양심의 문제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양심 따위는 일찌감치 개나 줘버린 사람들이 많다. 높은 자리에 눌러앉아서 누군가를 빼먹을 궁리만 한다.


 당하는 사람은 죄가 없지만 언제나 억울함은 당하는 사람의 몫이다. 공적인 관계로 얽힌 회사에서 사적인 형태로 주고받은 제안은 공론화시키기도 어렵다. 그만두거나 중도포기하면 정작 부탁했던 쪽에서 불이익을 주고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럴  직장인들은 회사와 인간에 대한 극심한 환멸을 느끼게 된다.


 역설적으로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회사원은 성장한다. 자기  일만 잘하고 귀찮은 에 휘말리지 말고 공적인 제안이 아니라면 쳐다보지도 않는 처세술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속이고 이용해 먹으려는 회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이래야 내가 산다. 직장인에게 중요한 것은 주인의식이 아니라 생존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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