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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04. 2024

사라지지 않는 상실감

 관계를 맺는 일이나 지우는 일이나 전부 시간을 소모한다. 마음을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비우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갈 때도 있다. 금세 털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도 있다. 약도 없도 정답도 없다. 어차피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모범답안이 없다. 하루하루 할 일을 하다 보면 계절이 달라지는 것처럼 지나간다. 다만 머리가 받아들여도 감정은 더디게 반응한다. 그래서 늘 상실감은 한 발 늦게 찾아온다. 혼자라는 현실을 뒤늦게 자각하게 되면서 슬픔과 아픔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온다.


 중학교 친구는 대학시절 암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너무 늦게 발견해서 손써볼 틈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본 친구는 의연해 보였다. 주위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빠르게 일상을 되찾았다. 친구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빠르게 취업해서 일찌감치 가정을 꾸렸다. 사회인이 돼서 몇 년 만에 그때 친구들을 만났다. 동태찌개를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찌개 맛이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을 때렸다. 다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의 그림자 아래 숨어있다 갑자기 나타나서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나이를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랑이 만남에서 비롯된다면 이별은 늘 고통을 동반한다. 적응할 수 있는 아픔은 없다. 사별이나 이별이나 생사의 경계와 상관없이 사람을 잃고 나면 아프고 힘들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나이와 경험이 늘어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면 깊은 곳에 뿌리내린 감정과 기억을 전부 드러내는 일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나이를 먹으면 담담하게 상실이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좀 더 어른스럽고 의연한 존재가 되는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상실은 아프고 그때나 지금이나 이별은 늘 힘들다. 다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 무덤덤하게 행동하는 것뿐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관습을 학습하면서 아이는 성인이 된다.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틴다.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억지로 넘어간다. 슬픔을 억누르고 아픔을 삼키면서 어른이 됐지만 고통에 대한 면역력은 형성되지 않았다.


 아픔은 견디다 보면 지나가고 슬픔은 버티다 보면 흘러가지만 결국 전부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그 시간이 외롭고 괴롭다. 마음에서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람들의 위로나 산더미 같은 일을 짊어지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않는다. 계절이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냥 기다릴 뿐이다. 길고 지루한 장마를 참고 견디는 것처럼 마음이 낫기를 기다린다. 인간의 감정은 여름날씨처럼 변덕스럽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알 수 없듯이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저 완화와 악화를 반복한다.


 함께 보낸 시간은 삶에 흔적을 남긴다. 온기와 추억을 품고 있는 흔적을 보면서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간다. 그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해소되지 못한 아쉬움은 후회를 불러온다.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상상과 망상 사이에서 허우적댄다.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겨우 정신을 차린다. 자괴감을 끌어안고 현실로 간신히 돌아오면 지쳐서 녹초가 된다. 고통은 갈수록 선명해지는데 지나간 시간 속에 남은 궤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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