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가슴 한가운데 텅 빈 것 같은 공허감이 느껴졌다. 무작정 통화버튼을 눌렀다. 스무 살 제일 빛나는 시기에 연달아 큰 일을 겪었던 친구였다. 부친상, 감당하기 힘든 빚, 파산 같은 문제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친구는 잘 살고 있다. 갑작스러운 전화였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가운 목소리라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내 상황을 말하고 어제오늘 느낀 감정을 이야기했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물어봤다.
친구는 지금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맞다고 해줬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일부러 축소하지 말라는 내용이 와닿았다. 가슴 한가운데가 말랑해야 하는데 딱딱하게 굳어서 꽉 막혔다면서 나를 걱정했다.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대학시절 내내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입을 닫고 살았다. 친구도 공감했다. 사람마다 방어기제는 다르다. 말하지 않고 속에 담아두는 것이 내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20년 넘게 쌓아놓고만 살았다. 사람들의 개인사나 가정사를 듣고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감추기만 했다. 그래서 내게 거리감을 느낀 이들도 있었다.
친한 친구들은 속에 담아두느라 언젠가 내가 무너질까 봐 걱정된다고 염려했었다. 그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때가 온 것 같다.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카톡을 남겼다. 엄마가 쓰러지면서 나도 같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방아쇠가 움직이면서 공이치기가 뒤로 넘어갔다.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전화가 걸려왔다. 두서없는 말을 정리해 가면서 드문드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친구는 차분한 말투로 내 상황을 정리해 줬다. 짧은 통화였지만 맘이 좀 나아졌다. 곧 만나서 속에 담아놓았던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했다. 통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공원을 지나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가게들이 보였다. 따뜻한 불빛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며드는 한기에 옷깃을 여몄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카페 유리창에 비친 생기 없는 내 얼굴은 꼭 유령 같았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삶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한계가 있지만 무너지기 전에는 좀처럼 체감할 수 없다. 운이 좋다면 주변 사람들이 위기를 감지할 수도 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경고신호를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지만 나는 시그널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늘 그랬다. 쌓아놓기만 하고 비우지 않았다. 물음표가 뜨는 감정들을 방치하고 살았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혼잣말을 되뇌면서 매번 넘어갔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친구들을 만났다. 눈에 익은 익숙한 얼굴들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졌다. 친구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닫아 놓고 살았던 마음의 문을 열었더니 아주 오래된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면 깊은 곳에 처박아뒀던 지난날들이 떠오르면서 천천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까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내 안에 벌겋게 물든 핏빛 상처들을 확인했다. 속은 엉망이었다.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나를 속이고 살았다. 오랫동안 쌓였던 과거의 짐은 안 좋은 일을 계기로 갑자기 무너진다. 그동안 끙끙거리면서 버티고 살았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지나갈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손가락을 꼬고 불행이 스쳐 지나가길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요행을 바라고 살았던 것 같다. 추스르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마음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삶에 대한 의지와 무기력이 반복되면서 그저 희망고문만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