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 삶은 수많은 분기점으로 나뉜다. 한 살 한 살 늘어갈수록 미련이 점점 늘고 있다.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 고민하면서 가지 않은 길을 자주 아쉬워하게 되는 것 같다. 긍정은 말보다 실천이 어렵고 감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지만 좋은 것이나 감사할 일부터 먼저 잊는다. 소중한 것들은 익숙함 속에서 본래의 빛을 잃어버리고 초라해진다. 뜨겁게 열망하고 간절하게 소망한 것들은 과거의 그림자 아래 차갑게 식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시절은 희미해진다.
괴로운 순간은 날이 갈수록 더 또렷하고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무기력이 감기처럼 찾아올 때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마음의 감기는 여러 가지 전조증상을 동반하지만 자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전보다 감정의 폭이 크게 너울지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양상이 변한다. 내 안에서 비롯된 감정들이므로 내면의 그림자 아래 감쪽같이 숨는다. 우울, 불안, 무기력, 공허감은 마음에 발병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왜 우리는 모르고 지나칠까? 알면서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금 지치고 피곤해서 예민해졌다고 여기고 넘어간다. 부모세대는 참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았다. 우리 세대는 경쟁과 양보라는 양립하기 힘든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했다. 겉으로는 협력하면서 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라고 교육받았다. 자기 계발로 포장한 처세술과 정치질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온 세대다. 막상 정말 힘들 때 이야기할 곳이 없다. 사교육에 기둥뿌리를 갈아 넣었지만 정작 고통을 달래고 아픔을 푸는 방법은 하나도 모른다. 어디서 배울 수도 없었고 사회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상대를 제치고 때로는 이용하는 무한경쟁 속에서 착한 사람이 되라는 궤변은 여전히 유효하다. 교육과 세뇌는 방법론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하다. 둘은 빛과 어둠으로 만든 데칼코마니다. 명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똑같다. 어린 시절 우리를 지배한 가치관은 인간다움이나 다양성을 배제했다. 답은 정해져 있어서 정답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을 중시하는 오지선다는 창의적인 사고를 원천봉쇄한다. 주입식 교육아래 획일화된 세뇌의 결과는 다양한 선택의 소멸로 이어졌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다르고 성격마저 판이하게 나뉘는데 선택지는 늘 객관식이다.
다 똑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고 틀 속에 자신을 욱여넣느라 고통받는다. 그것이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자 이유다. 다들 어른이 되면 내가 틀렸다고 못났다고 자책하는 버릇이 생긴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나만 뒤처진다고 자책한다. 비교가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적 풍토는 자비나 관용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한국사회는 실수하면서 배우고 실패하면서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답이 아니면 철저하게 배제당한다. 남들을 따라가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고 남들처럼 살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
내가 잘못됐다는 인식은 자괴감과 죄책감을 동반한다. 다양성이 소멸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오답을 고른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통뿐이다. 스트레스는 계속해서 쌓이고 풀 곳은 어디에도 없다. 순간적인 쾌락이나 관계에서 얻는 일시적인 안정감은 담배연기처럼 금세 흩어진다. 그렇게 조금씩 망가지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그때부터 나약하고 못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가면을 쓴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가면을 써야 한다. 웃는 얼굴 아래 오열하는 표정을 숨기고 지냈다. 약점은 감추고 단점은 포장하고 장점과 강점만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속내는 감추고 진심은 삼킨다. 할 말은 가슴 깊은 곳에 가득 쌓아두고 빈말만 오고 가는 관계가 사회를 지배한다. 다들 외롭고 말은 안 하지만 괴롭다. 삶은 오지선다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느꼈던 허무감과 배신감은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낙인을 찍었다. 소수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들을 부적응자로 규정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세계 1위의 자살공화국이 됐다. 잠재적인 위험군이나 심각한 고위험군은 이제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마음의 자가면역질환은 증상이 제각각이다. 완벽하게 듣는 약이나 치료법이 없다. 그래서 힘들다는 한마디는 그 어떤 말보다 무겁고 아프다. 진심을 감추고 처세에 열을 올리면서 쉼 없이 두드린 계산기가 가져다준 결과물은 행복일까? 남들 따라가면서 얻은 것들이 괴롭고 외로운 순간의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거대한 파도 같은 탈력감에 쉽게 무너져 내린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갈림길 앞에서 고심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두 갈래길 위에서 느끼는 고독감은 처절하다 못해 처참하다. 고심 끝에 한걸음을 더 내딛기 직전에 한 끗차이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온다. 이정표 앞에 서면 선택권이 언제나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살아남았다. 앞날이 불투명한 불안한 삶이지만 선택했다. 한 번 더 살아보기로 했다. 다음 분기점에서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현실은 어둡고 마음은 괴롭고 내면은 외롭지만 그래도 조금 더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