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제이 Oct 26. 2022

계테크스터디 #6 천천히 하다 보면 빨리 될 거야

속도보다는 방향성

 나는 조급한 편이다. 의도한 것이 빨리 되지 않으면 무언가 불안하고 불편하다. 원래 성격이 이런 건지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조급증이 올라올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가 가장 아끼는 한 사람이 언젠가 내게 해 준 말인데, 덕분에 조금은 여유 있게, 천천히 살아올 수 있었다.


  말은 ‘천천히 하다 보면 빨리 될 거야.’ 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빨리를 좋아한다. 점심시간에 쫓기듯 밥을 먹고 인터넷이 느리면 화가 난다. 버스는 왜 이렇게 제때 안 오는지 모르겠고, 운전할 때도 이리저리 차선 바꾸기를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 급하게 하면 꼭 탈이 난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는 지름길인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함께 할 상대를 선택하고, 멈추어 있던 관계의 추를 움직여 조금씩 상대와 라포 (rapport,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시간의 힘을 빌어 점차 관계를 견고하게 만들 차례이다. 소설의 5단계 구성단계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서 전개에 해당되는 시점이고, 우리 인생으로 보자면 10대~20대쯤 되겠다. 이 단계에서는 억지로 자신의 속도에 상대방을 맞추려 해서는 안된다. 나의 일상으로 상대를 무리하게 끌어당기거나, 성급하게 친해지려 하는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너무 전력 질주하지 말자


 당신도 학교 입학식, 회사 신입사원 교육 등을 겪으며 새로운 사람과 만나 급속도로 친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20대 신입사원 OT에서 같은 학교 출신 신입사원 동기를 만난 적이 있다. 대화가 잘 통하고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나는 귀갓길 잔뜩 취한 상태로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너와 회사에서 절친이 되고 싶다'는 내용의 장문 톡을 보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다른 회사로 입사를 하여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고, 한동안 그 톡의 오그라듦이 떠올라 이불 킥을 하곤 했다. (나 때문에 다른 회사로 간 건 아니겠지...? 잘 지내니 친구야?) 나의 경우처럼 인연이 확 끊기지 않더라도, 급속도로 친해졌던 상대가 나중에는 스치듯 인사만 하거나 ‘밥 한번 먹자~’하는 사이로 바뀐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타인의 마음을 빨리 얻기 위해, 무리해서 관심을 갈구하고 무리하게 내 생각을 종용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관계의 수레가 삐걱하며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듯하다.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를 새롭게 시작되기 위해 에너지를 썼다면, 천천히 서로가 스며들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서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필요한지 의아하던 때가 있었다. 빨리 지으면 1년도 채 안 걸릴 것 같은 아파트 공사가 왜 2~3년씩 걸리는 걸까? 게다가 다리를 짓고 지하철을 뚫는 데는 훨씬 더 오랜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땅을 파고, 구조물을 올리고, 콘크리트를 바르는 각 단계에 소요되는 시간들이 현대 기술이 발달하면서 조금씩 단축되어 왔을 텐데 왜 여전히 시간이 오래 걸릴까?


 그러던 차에, 건축물이 지어지는 단계들을 상세히 학습할 기회가 있었다. 건축물은 내가 생각한 만큼 뚝딱 하고 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업승인이나 설계 같은 지루한 사전 준비 단계부터 시작해서, 첫 삽을 푸고 나서도 수없이 복잡다단한 공정을 거쳐서야 건물이 완공된다는 것을 배웠다. 장비를 동원하고 진출입로를 확보하고 사무실을 꾸리며 공사 준비를 한다. 터파기를 하고 철근을 심고 콘크리트를 시험한 후 타설 한다. 하나하나 건축공정을 거치면서 건물이 층층이 올라간다. 층이 올라간다고 끝이 아니다. 설비나 전기 공사, 내장 인테리어, 외장 공사, 안전검사 등등 필요한 단계는 수없이 많다.


당신과 나의 관계를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며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입하고 발달된 기술을 쓰더라도 건물을 쌓아 올리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그 시간이 조금씩 단축되긴 하겠지만 최첨단 기술을 가진 외계인이 뿅 하고 나타나지 않는 한, 인간이 땅을 파고 철근을 올리고 콘크리트를 말려 가며 건물을 짓는 데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아무리 급하게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해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되기 위한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순식간에 눈이 맞아 의기투합할 수 있겠지만, 그런 관계에는 언제나 부실시공의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서로가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꽃에 물을 주듯 충분한 관심이 필요하며, 꽃을 피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 또한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스포츠카도 서울~부산을 10분 안에 주파할 수 없다. 기억하자. 우리는 판타지 소설의 만렙 주인공이 아니다. 이제 막 모험을 떠나는 새내기 용사일 뿐이다.




 상대방과의 친밀도를 키워가는 과정에는 조금씩 시험하고 맞춰가고 다듬어가고 조정해가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기본 정보는 금방 알 수 있지만 상대의 성격, 습관, 속마음과 같이 숨어 있는 내재 정보들을 짧은 순간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며, 관계의 경계선에서 서로를 조금씩 드러내고 조율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험과 대화를 함께 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가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는 것은, ‘우리는 이제 친구다.’처럼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영향권에 들면서 나로 인해 상대의, 상대로 인해 나의 생각과 행동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상대의 드라마에, 그리고 나의 드라마에 각자가 등장인물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인생극장 1회에 엑스트라로 등장했다가 2회부터 중요 등장인물이 되기는 어렵다.


 너무 조급해하다가 망쳤던 관계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내가 기대한 만큼 상대방이 반응해주지 않아 서운했던 경험,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려고 억지로 약속을 만들고 부담스럽게 했던 경험 등등. 요즈음 나는 급하게 약속을 잡지 않는다. 특히, 1년에 한두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는 대학교,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모임은 한 달 뒤, 두 달 뒤로 여유롭게 잡는 편이다. 무책임하게 '다음에 술 한잔 하자' 하기보다는 확실하지만 부담 없게 다음 달의 하루를 미리 약속한다.


천천히, 하지만 차곡차곡 확실히


 인간관계에 집착하거나 너무 서두르지 말자. 혼자 열을 올려 봐야 상대가 내 페이스에 따라오지 않는다. 오히려 나만 금방 지칠 뿐이다. 인간관계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위해 지금 내가 해야 할, 또는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 천천히 하다 보면 빨리 될 거다.




  인간관계라는 주제뿐 아니라, 나아가 인생의 목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김경일 인지심리학 교수님께서 한 특강에서 이야기하신 말이 있다. “당신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팀장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던 선배들을 보아 왔다. 그들의 목표는 ‘회사에서 팀장이 되는 것’이었다. 팀장이 된 선배들은 이후에 본인이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팀장이 된 후 방황하고 길을 잃곤 했다.


 인생은 명사이기보다는 동사여야 한다. 목적지에 빨리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속도보다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인생의 일부분으로서,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과 나의 관계 또한 ‘서로 긍정적인 바이브를 공유한다.’와 같이 명사보다는 동사로 정의되는 것이 더 유효하다. 속도보다는 방향성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기보다는, 새로운 만남으로 각자 살아온 인생이 교차하고 조금씩 서로를 향해 삶의 비행 각도가 선회하고 있는 지금을 즐기자. 아직 어색하고 서로에 대해 무지하다 하더라도, 그 거리감을 불편해하기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집중하자.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친한 친구 1명 추가’가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하고 생각을 나누며, 의지하고, 같이 성장하는 경험을 하기 위함이다. 100의 친밀도를 빨리 채우기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10, 20, 30으로 관계의 건물을 세워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히 200, 300의 관계도 생겨날 것이다.

이전 07화 계테크스터디 #5 관계의 속성, 관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