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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제이 Oct 29. 2022

계테크스터디 #8
희로애락적 사람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호르몬의 노예 일지도 모르지만

 회사 앞에 평소 좋아하는 도넛 매장이 생겨서, 팀원들 간식을 사겠다는 핑계로 도넛 10개를 샀다. 팀원은 7명이니 10 나누기 7을 하면 3이 남는다. 누군가는 2개 이상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도넛을 사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요즘 부쩍 신경 쓰이는 뱃살을 떠올리며 꼭 1개만 먹어야지 하고 결심했다. 


 하지만 음, 글쎄 그게 말이지. 음, 그래 맞다. 고백하자면 나는 3개를 먹었다. 몇 명은 하나씩만 먹고 안 먹는다는 팀원도 있었거든. 커피랑 먹으니까 그렇게 맛있을 수 없더라고….


 우리는 사람의 욕구, 감정, 본능 등 이성으로 통제받지 않는 영역에서 촉발된 우리의 행동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항상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나의 두뇌가 도넛을 1개만 먹으라고 명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식탐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3개째 도넛을 기어코 집어 먹었다.


정말 하나만 먹는 건 너무 인간미가 없지 않나?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위험도가 낮고 나쁘지 않은 결과에 도달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의식에 통제받지 않는 행동들은 상당수가 비효율적이다. 그리움을 못 이기고 전 연인에게 밤늦게 톡을 보내거나, 화가 난 나머지 친한 사람에게 성질을 내고 이불킥 한 적이 있지 않나? 나 또한 마찬가지다. 순간의 감정을 잘 못 다스려 후회한 적이 많다. 이성의 목소리를 따르는 편이 안전하고 합리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경험을 반복하며 감정보다는 이성의 편을 들게 된다.


 회사처럼 공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고, 조직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곳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높이 올라간 임원을 보면 소위 소시오패스 느낌의 사람도 많았다. 정에 이끌려 일 못하는 직원을 계속 내 사람으로 챙긴다거나, 싫은 소리를 못하는 리더나, 또는 반대로 자기감정 조절을 못하는 리더는 본인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임원은커녕 팀장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 했다. 




 감정은 본능, 또는 무의식과 맞닿아 있다. 본능과 무의식을 이겨내고 감정을 통제하며 자기 객관화를 통해 본인의 행동을 제삼자의 행동처럼 해낼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 비단 인간관계뿐 아니라, 사업, 조직생활, 투자 활동에서 남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지금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매일 무의식적으로 늦잠을 의식적으로 자다가도 본인의 잘못된 습관을 인정하고 늦잠을 자고 싶은 본능을 이겨내어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보통의 사람에게,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자율주행차처럼 아무 생각 없이 누워만 있어도 목적지에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이성적이기만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감정을 숨긴 채 절제하여 거세한 듯 사는 것은, 부의 축적이나 사회적 성공 측면에서는 좋은 삶일 수 있으나,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감동과 기쁨까지 통제받게 되어 인생이라는 게임 전체로 본다면 100% 성공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2개의 모드로 구성된 인생의 게임을 절반만 플레이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도 미처 자각하지 못하던 나의 감정과 본능을 자주, 명확히 알아채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욕구를 통제하되 너무 거스르려 하지 말 것이며, 보듬고 쉬어가며 슬기롭게 해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욕구 = 호르몬이라고 말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결국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감정을 좌우하는 것은 호르몬의 기작이다. 이를테면 연인관계에서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중독 호르몬인 도파민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도파민의 노예가 된다. 연애 초보들은 무작정 연인의 집 앞에 찾아가기도 하고, 비싼 명품을 선뜻 구매하여 선물한다. 도파민을 끝없이 갈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도파민과 같이 강력한 호르몬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호르몬과 정면으로 싸우기보다는 본인이 호르몬에 지배받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감정의 폭풍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나아가 도파민과 친구가 되어 이를 원동력으로 삶의 의욕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연애 고수들은 상대방이 도파민에 휩싸여 자신에게 끌리게 하곤 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고, 생물이다. 호르몬이 인간을 구성하는 한, 욕구, 감정, 충동으로 인한 비효율적인 행동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나도, 당신도, 상대방도, 누구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기에 항상 합리적일 수는 없으며, 시간과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가변적이며, 의도치 않은 돌발 행동을 하고 후회하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든 같은 자극을 받으면 항상 같은 반응이 돌아올 것 같지만, 아니다. 매일 A를 받으면 A를 출력하다가도, 어느 순간 B를 출력하기도 한다. 또는 C를 출력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A를 출력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 옆자리에 있는 김 사원도 부장의 지시에 매일 웃으며 네, 네하다가 가끔 한 번쯤은 알게 모르게 인상을 쓸 것이다. 집에서 맨날 소리만 벅벅 지르던 짜증 나는 남편도 어쩌다 한 번씩은 다정할 때가 있다. (없나? 음 그래도 몇십 년 결혼생활 중에 한두 번은 있지 않을까? 미안하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갑자기 어제와 다른 반응이 돌아온다 해서 인간관계는 역시 어렵네 하면서 머리 싸매지 말자. 원래 그렇다.


이 녀석, B나 C만 프린트할 줄 알았더니 오늘은 Z까지 갔네


 ‘인간은 감정적이고, 때로 욕구에 충실하며, 변화무쌍한 동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자. 내가 항상 이성적이지 못하고 때로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까? 마찬가지다. 내가, 상대방이 그러함을 인정하자. 그래야 우리는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




 로봇에 명령어를 입력하듯 논리적인 말만으로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말자. 논리와 당위성에 근거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것은 그 순간 그 사람의 말문을 막히게 할 수 있으나, 인간관계 측면에서는 득 될 것이 전혀 없다. 논리로 설득해서 설전에 이기기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공감해 주고, 서로의 감정을 동기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상대의 숨겨진 욕구가 무엇인지, 지금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감정의 맥락을 함께하고 동질감을 갖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고차원의 관계 맺기를 하게 된다.


 인사팀에서 노동조합을 상대하는 업무를 노사 업무라고 보통 칭한다. 어떤 회사에서는 노사 담당자가 아침에 늦게 출근해도 터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전날까지 노조를 상대하면서 술을 죽어라 마셨을 것을 다들 알기 때문이다. 노사 담당자의 최고 덕목은 1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노조 간부들과 얼마나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느냐, 노조원들의 동향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느냐, 그래서 언젠가 발생할 노사 간의 갈등에 본인의 영향력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익과 명분이 그럴듯한 논리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 노사 간 협상 무대이나, 아이러니하게도 1차적으로 형동생 관계를 만들고 감정을 교류하며 공감대를 조성하는 방식이 가장 우선시 된다. 그래서 인사 업무 중에서도 노사 업무는 가장 고난도의 업무로 분류된다. 다른 업무는 영혼을 버리고 하는 척 해도 크게 티 나지 않을 수 있지만, 노사 업무는 영혼을 넣어 상대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리는 진정성 없이는 실패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옆 팀 후배가 파리로 즉흥 여행을 떠났다 돌아왔다. 휴가철이 아닌 4월이었으나 갑자기 떠나고 싶어 져서 1주일의 휴가를 미리 내고 당장 4일 뒤 떠나는 비행기를 끊었다고 한다. 첫날 숙소만 급하게 예약하고 비행기에서 여행 루트를 짜고 간 여행이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더라.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삶에 대한 많은 고민들을 정리하고 돌아왔다는 그녀의 표정에는 만족감과 생동감이 넘쳤다.


 우리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터치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 나의 감정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쳇바퀴 굴러가는 반쪽짜리 인생이지만, 때로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을 관찰하는 여유를 가진다면 좋겠다. 위의 후배처럼, 본인의 감정을 뿜뿜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영역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오롯이 감정에 충실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작은 일탈과 소소한 경험들은 평소 지쳐 있던 마음을 달래고 더 길게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며, 나의 에너지는 상대방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드류 배리모어는 본인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했다. 이제 40대, 50대가 된 그들은 수십 년 전의 특별한 기억을 회상했다. (두 사람은 1986년 Babes in Toyland에 함께 출연했었다.) 드류 배리모어는 당시를 회상하며 감격에 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클럽에 있었고, 그날은 저의 16살 생일이었죠. 당신은 걸어 들어와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간 후, 당신의 오토바이에 태우고 놀라운 속도로 달렸죠. 그때 나는 정말 자유로운 사람이었죠. 그 순간 나는 내 인생을 사랑했고 무척 행복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그런 느낌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전 그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수십 년 전을 회상하며 여전히 즐거운 드류 베리모어와 키아누 리브스 (출처 : 유튜브 드류 베리모어 쇼)


 막상 키아누 리브스는 그 순간을 잘 기억 못 하는 눈치였지만, 뭐 어떠랴. 수십 년이 지나서도 상대의 기억에 즐겁게 회자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만들고, 마주할 필요가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도넛을 3개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배에 대한 죄책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래도 두 번째 도넛 덕분에 커피가 더 맛있었고, 세 번째 도넛 덕분에 팀원들과의 대화가 즐거웠으며, 오후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었다.


 최대한 냉정하자. 감정의 회오리에 매몰되지 말자. 하지만 동시에, 나나 당신을 포함하여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감정적일 수 있음을, 상황에 따라 180도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자. 당신 내면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에너지를 얻으며 이성과 감성이 어느 한쪽만 편향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만의 방식을 터득한다면 더욱 좋겠다. 도넛 몇 개 더 먹었다고 죄책감 느끼지 않기를.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지는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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