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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제이 Oct 29. 2022

계테크스터디 #10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요, 우리

평생 안 싸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평생 타인과 단 한 번의 싸움 없이 평화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어른이 되어가며 갈등을 회피하는 요령이 생기거나, 새롭게 관계 맺을 기회가 없어 싸움의 가능성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긴 인생 동안 단 한 번도 갈등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의 스터디 주제는 관계가 성숙해지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관계의 위기, ‘갈등’이다. 


 갈등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모두 언급하기는 어려우니, 오늘의 스터디에서는 '발단과 전개를 거쳐 충분히 가까워진 관계에서 상대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촉발되는 갈등'에 대한 논의에 집중해 보자. 도로에서 우연히 옆 운전자와 시비가 붙어 싸우는 것은 ‘갈등’ 보다는 ‘사고’에 가깝다. 거짓말이나 사기 등으로 뒤통수를 맞는 등 명백한 타인의 잘못이나 인성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 또는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 차이 (이를 테면 회사에서 회의를 하다가 생각 차이로 대립하는 경우) 등으로 발생하는 갈등도 논외로 하자.


 왜냐하면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대처해야 할 방식들은 대부분 명확한 편이기 때문이다. 피하거나, 시시비비를 명확히 따지거나, 정 안되면 법의 도움을 받거나 하면 된다. 그래서 계테크스터디 보다는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한 처세술 스터디에서 다뤄야 할 내용에 가깝다. 대신 가족, 연인, 친구, 친한 직장동료와 같이 삶의 공감대가 있는 관계에서 기대와 현실의 괴리로 발생하는 갈등관계는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어렵고 해결 방식에도 정답이 없기에, 우리가 한 번쯤 논의해봄직한 주제이다.


뭐가 됐든 폭력은 쓰지 말아요 우리




 수십 년간 다른 길을 걸아온 두 사람이 만나 친해지고, 깊은 생각을 나누고, 서로에게 맞추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평생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던 관계도 100% 좋기만 할 수는 없다. (만약 갈등이 1도 없다면,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맞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천, 수만 가지 이상 다양한 사례들이 있겠지만, 이런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점이다.


 갈등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기대가 큰 동시에, 가까울수록 단점도 잘 보인다. 상대가 기대한 것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기대를 저버리거나 하는 경우, 우리는 실망하고 불만을 표출하게 마련이며 불만의 해소 과정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종국에는 언쟁, 싸움, 관계 단절과 같은 갈등이 이어지게 된다. 평소 존중하고 우호적인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함께 하는 시간에 비례하여 언젠가 갈등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마음의 거리가 먼 사람과도 다툼은 있을 수 있으나, 이런 경우는 대부분이 마음의 차이가 아닌 단순 의견의 차이이기 때문에 의견이 합치되거나 객관적인 결론이 정해지면 상황이 종료되는 단편 옴니버스 드라마 같은 갈등이다. 감정적으로 격양되어 싸우거나, 누구 하나가 삶의 방식을 조정할 필요가 크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은 마치 몇십 부 대하드라마와 같다. 한 회 한 회의 갈등이 전체 스토리에 연향을 미친다. 수십 년 전 상대방의 실수를 언급하며 싸우는 부부처럼.


그냥 말없이 걷는 것만으로 관계가 풀리는 때가 있다.




 갈등의 순기능도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유명한 속담처럼, 한 번 드러나고 잘 봉합된 갈등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토양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는 싸우지 않는 연인이 더 위험하다. 어떤 연인이든 100%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 관심을 갖고 기대하는 바를 드러내며 건강한 갈등을 거치는 것은 견고한 관계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면에 억지로 갈등을 피하기만 하면, 나중에 진짜 갈등 상황에서 누적된 불만을 원만하고 건강하게 해소하기 어렵다. 또는 각자가 관심이 없어서 아예 싸울 일이 없지만 지금까지 이어진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겉모양만 유지되는 관계도 있는데, 우리는 이를 권태라고 부른다.


 물론 억지로 싸우라는 뜻은 아니다. 일부러 가만히 있는 상대에게 시비를 걸며 관심을 표현하거나 (초등학교 시절 관심 있는 이성친구에게 괜히 틱틱거리듯), 무조건 상대가 나에게 맞추도록 종용하는 것은 건강한 관계 맺기가 아니다. 대신 이를테면 당신이 만약 지금 연애 또는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없이 그냥 껍데기처럼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는 뜻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과, 관심이 없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상대의 나에 대한’ 기대나 관심을 미리 줄여 놓는 것이다. 회사에서 매번 오버페이스 하여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언젠가 정말 힘들어 업무 텐션을 낮추면 주변 사람들이 ‘김대리 변했네’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매번 전력질주하지 말고, 적당히 힘든 척 하자. 초반 스터디에서 말했지만, 조금 치사해도 괜찮다.


상대방의 기대치를 너무 확 끌어올리는 것은 결국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천천히, 천천히. 완급 조절하기.


 22일, 33일, 100일, 200일, 기념일 때마다 연인에게 선물을 사 주다 보면 상대방은 항상 다음을 기대하게 되어 있다. 20대 가난한 학생으로 연애를 하던 시절, 나도 상대방을 매일같이 집에 데려다주곤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끊겼는데 택시비가 없어서 벤치에서 밤을 새우고 첫 버스를 타고 온 적이 있다. 요즘은 보기 힘든 순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날 밤은 무척 쌀쌀했고, 나는 길고 긴 밤을 거리에서 보내고 감기를 얻었다. 우리는 상대방의 기대감을 영리하게 충족시킬 줄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무심한 듯하다가 특별한 날 과감하게 감동을 주는 것이 오히려 가성비가 더 좋다.




 기대를 너무 낮추면 관계가 아예 끝날 수 있으니 조심하자.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도록 하자. 과거 한 선임 부장님과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과장 때부터 회사에서 높이 올라가겠다는 꿈을 접은 후 십수 년간 일 욕심 없이 최소한의 업무만 해 온 분이었다. 월급만큼의 밥값만 딱 하고, 대신 복잡한 업무 관련 예외사항과 특수사례들을 빼꼼히 기억하여 그 분야에 대해서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부장이 되었지만 팀장을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기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소속 팀장이 수차례 바뀌었으나 새로운 팀장들이 그 부장에게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큰 갈등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자기 할 일만 따박따박하고 칼퇴를 하고, 퇴근 후 제2의 삶을 즐기고 부동산 투자를 성공하더니 회사를 유유자적하게 다니다가 퇴사했다는 후문이다. 상대가 너무 과하게 기대하지 않게 하되,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기대를 아예 없애거나 상대에게 필요가 없는 존재로 비쳐서는 안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너무 크게 갖지 말자. 처음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누구나 치사한 존재다. 극단에 몰리면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되어 있으며, 상대의 큰 고통보다 나 자신의 작은 고통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니, 아무리 가까운 상대라 하더라도 내 기대에 항상 부응해 줄 것이라 너무 기대하지 말자. 과도한 기대는 언제나 실망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위기에 대해 너무 신경 쓰거나 전전긍긍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가끔 인간관계 하나하나에 너무 예민하고 날이 서 있다. 모든 인간관계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어느 시점에 누군가에는 필연적으로 실망하기 마련이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처럼, 갈등을 통해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계기로 삼거나, 혹은 억지로 갈등을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때는 무던하게 내 생활을 하며 신경 끄며 사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말만 이렇게 하지 매일 상대방에게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다시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의도적으로 관심을 끄는 노력을 하다 보니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다. 우리는 시간의 힘을 믿고 천천히 바뀌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떠한 관계도 전혀 갈등 없이 지낼 수는 없다. 주변 관계에서 갈등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모든 것을 상대에게 맞춰주고 양보하는 삶, 다시 말해 갈등이 없어 순간은 편할 수 있으나 나의 행복은 저 멀리 방치해 둔 삶을 살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는 평화적인 삶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타인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상대가 나에게 기대하는 만큼 기꺼이 상대에게 기대하자.


 갈등이 심화돼서 관계가 완전히 쫑이 나고 심리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갑자기 연인이 이별을 통보하거나, 믿었던 친구와 한 번의 큰 말싸움으로 의절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은 한 사람의 멘탈에 매우 큰 충격을 주고, 삶의 전반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또 중요한 것은 원래의 멘탈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이다. 전쟁이 나서 국토가 황폐화되어도 얼른 수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넘어지더라도 얼른 일어나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평소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하나의 관계에만 의지하지 말아야 하고, 나 스스로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 타인의존적이지 않아야 한다.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면 되지 뭐.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내가 존중받는 이상적인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기대를 표현하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억지로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양보하며, 천천히 하나씩 맞춰갈 수 있는 관계가 많을수록 우리의 인간관계는 안정화된다.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는 계테크스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나의 생각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나는 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타인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 또한, 오늘 여기서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타인에게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에서 서로 존중받고 존중할 수 있는 관계들이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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