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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제이 Oct 29. 2022

계테크스터디 #9
빌런끄기

악당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사람이 다섯 명 모이면 그중 꼭 한 명은 X라이 라는 말이 있다. 살면서 매번 좋은 사람들만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대화가 통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 큰 축복이다. 그러나 현실 세상은 녹록지 않다. 살면서 꼭 한 번쯤은 빌런 (Villain, 주로 영화나 소설 등에서 악당을 부르는 말)을 마주치게 마련이다. 이번 스터디의 주제는 나쁜 사람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대처하는 법이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빌런은 정상인의 스펙트럼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빌런의 최대치를 10빌런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흔히 희화화하는 꼰대 부장님 캐릭터는 3빌런 정도다. 소시오패스, 가스라이팅 전문가, 나르시시스트, 분노조절장애, 연극성 성격장애 등등, 수천 명이 근무하는 회사의 인사 업무를 하다 보면 9빌런이 넘어가는 다양한 유형의 인간군상들을 직간접적으로 겪게 된다. 내 기준으로 5빌런 정도는 넘어가는 사람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성격이 괄괄하거나, 대화가 안 통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1~2빌런 정도의 순한 맛 캐릭터는 디에나 있다. (그런 기준으로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일지 모른다.) 반면에, 빌런미를 대놓고 드러내는 타노스급 매운맛 릭터는 오히려 찾기 어렵다. 리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진짜 빌런들은 대부분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5~7빌런을 오가는 빌런들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만 얼핏 멀리서 보기에는 정상에 가까운, 먹어보기 전에 맛을 가늠하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정상인지 빌런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빌런은 피하자. 다시 한번 얘기한다. 피하자. 굳이 맞서지 말자. 그들에 대한 신경 스위치를 끄자. 어릴 때부터 악당을 물리는 만화와 게임에 길들여진 우리는, 때때로 정의의 아이언맨이 되어 직접 타노스 무리를 물리쳐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지기도 한다. 상대하는 자체가, 신경 쓰는 자체가 인생의 마이너스다.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 영화에서 빠져 나와 다른 영화에 집중하라. 피하는 게 상책이 쓸데없는 곳에 당신의 소중한 에너지쏟지 말자.




 5년 전쯤, 영업팀 대리가 다짜고짜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더니 면담을 하자고 했다. 회의실에서 마주 앉은 대리는 다짜고짜 본인 팀장이 자기한테 한 일을 고발 (순간 내가 경찰인가 싶었다.) 하겠다고 하더니, 팀장이 소리 지른 5초짜리 녹음파일을 재생시키고는 흐느껴 울었다. 나는 몹시 당황하였으나 인사팀장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말하며 진정시킨 후 돌려보냈다.


 나중에 전후 사정을 살펴보니, 그 대리는 몇 주 전부터 인사담당자들을 번갈아 찾아와 자신의 팀장을 디스해 왔다고 한다. 팀장이 소리를 지른 것은 물론 잘못된 행동이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리가 지각을 밥 먹듯 하고 업무를 펑크내기 일쑤였기에, 참다 참다못한 팀장이 소리 지른 것을 옳다구나 하며 녹음하여 들려준 것이었다. 주변 평판 더 가관이었다. 메일을 보내면 확인하지 않는 것은 보통이고 별 것 아닌 일로 주변 이들에게 정색하여 그 대리 이야기가 나오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런데 대리는 어떻게 승진했을까 아직도 미스테리다…. 어느 회사든, 회사 시스템만 믿으면 안 된다.)


 인사담당자들을 괴롭히는 레퍼토리도 비슷했다. 상담을 신청하고, 녹음을 들려주고, 눈물 호소하며, 팀장을 바꿔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는 아무 일 없는 듯이 웃으며 일한다. 나와 인사팀장은 그 대리가 일종의 연극성 인격장애를 겪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대리의 일에 개입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고, 대리가 종종 메시지를 보내왔으나 대꾸하지 않았더니 다행히 더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리가 퇴사하게 되어 인사팀에, 회사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결말이다. (퇴사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세상에는 더 심한 사람도 많겠지만 이 이야기의 무서운 점은, 그 대리를 잠깐 봐서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1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인사담당자들은 이런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평온하게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람들이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을 절대 표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의도나 맥락 없는 행동은 없다.


정말? 대박. 걔가 그럴 줄은 몰랐어! 아, 내 얘기하는 거였니?




 처음부터 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세상을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억지로 강요받게 된다. 학교, 군대, 회사, 심지어 친척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관계들이 있고, 통계적으로 그중 빌런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무시하라. 이 사람이 내 인생에 1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반응하지 마라. 싫은 티조차 내지 마라. 최대한 나의 인생에서, 나의 게임에서 완전히 배제된 사람처럼 행동해라. 그 사람이 나보다 직장상사 같이 인생에 필요한 사람이라 무시할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만 맞추자. 대신 최대한 빨리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자.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헤어질 때까지 버티자.


 빌런을 피하기 어렵고, 헤어질 순간이 요원하여 너무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이 경우, 필요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정색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너무 다양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우나, 평화롭게 지내기 위한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내가 할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자그마한 권리에 대한 목소리라 하더라도 매우 중요하다.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한 발자국 침범해서 자기 나라라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라. 한 발자국이니까 괜찮겠지 허허~ 하다 보면 두발, 세발이 되어 결국 나라를 모두 뺏길지도 모른다. 때로는 용기를 내보자.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물론 너무 순간의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충분히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전투준비를 한 후 최소한의 승산이 있다 판단될 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권하고 싶다.




 가장 어려운 빌런 중 하나는 가스라이팅을 즐기는 빌런이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다. 본인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조그마한 흠을 들어 상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인데, 쉽게 말해 누가 봐도 90:10인 사고의 과실을 10:90으로 바꾸려고 한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을 상대하며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자 또는 상대방의 권위에 굴복하여 그냥 미안하다고 넘겨 버리고 속앓이를 하곤 한다.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이 맞나? 이게 정말 맞나? 하는 질문을 주기적으로 던져 보자. 어느 순간 ‘아 이건 선 넘었지’ 하는 상황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확실하게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가스레인지 앞에서 뭐 하는 거야..? 왜 날 보며 입맛을 다셔...?


 나를 괴롭히는 상대를 향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할 수도 있다. 당장에는 분명 편하게 인생을 사는 방식이다. 억지로 싸우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계테크스터디를 하는 우리 멤버들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더 잘 살기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 이미 당신은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것이기에 그 누구도 마음대로 조종해서는 안된다. 호의랍시고 맞춰 주다간 호구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편하게 당장을 모면하려 하면 나중에 더 큰 불편함이 돌아온다. 우리 인생에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용기는 필요하다. 적어도 당하고 있지만은 말자.


 참, 그리고 빌런들은 대부분 영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무리 밖에 떨어진 사슴 같이 만만한 사람들을 건드리는 육식동물이다. 나도 회사에서 사원, 대리 때 많이 당해봐서 안다. 국토를 지키기 위해 국방력을 기르듯, 누구도 쉽게 대할 수 없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외모가 될 수도 있고 지식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아무나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아무나'가 아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나가 되지 않기 위해 로봇이 되기를 선택함


 인생을 살다 보면 확률적으로 한 번은 이상한 사람을 마주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매번 싸우거나 상대방을 바꿀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상한 사람을 만날 확률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하며, 나의 가치를 높이고 위치를 높여 궁극적으로는 상식이 통하고 교양과 생산성 있는 집단의 이너서클(Inner circle)에에 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 주변에 모인다는 이치를 기억하고, 지금 당장은 안되더라도 조금씩 나를 바꾸어 주변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빌런을 상대하는 법을 요약해 보자면, 나의 가치를 높여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은 좋은 집단에서 속함으로써 빌런을 만날 확률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메인 스트림, 소위 인싸가 되어 빌런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며, 만나게 된다면 가장 상책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다. 반응도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다면 시간을 두고 벗어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최후의 경우에는) 싸울 용기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지금 상황에서 빌런을 회피하기 어려우며, 헤어질 순간이 요원하며 너무 많은 고난을 감수해야 하고, 내 권리를 선뜻 주장하기에는 너무 강력하거나 대항하기 위해 나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완벽한 해결책은 없겠으나, 내 주변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 주로 취하던 몇 가지 방식을 소개하니 조금은 도움은 되기를 바란다.


 첫 번째는 상대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더 강한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방보다 더 강한 사람의 권위로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대신 고자질하거나, 티 나게 그 사람을 이용하려 들면 안 된다. 그 사람과 가까운 관계임을 어필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어? 쟤랑 우리 팀장이랑 친한가? 하는 의문만 들게 해도 반은 성공이다.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는 공권력이나 법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번째는 빌런은 빌런끼리 상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직적 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관계, 이를테면 동네 학부모 모임 등에서는 사실 제삼자의 권위를 활용하기 어렵다. 그럴 때는 이이제이라는 처럼, 오랑캐는 오랑캐로 막아보자. 빌런들끼리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서, 서로의 관심이 서로를 향하게 해야 한다. 영수네 엄마가 내 앞에서는 호호하면서 뒤에서 맨날 내 욕을 하고 다닌다고 하면, 동네 쌈닭으로 소문난 철수네 엄마와 접점을 만들어서 둘이 엮이도록 해보자. 빌런은 빌런끼리, 그네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게 만들고 우리는 빠지는 거다.


 끝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정치권 댓글부대처럼 여론조작을 하거나 험담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빌런과 내가 겹치는 인맥에서 나에 대해 우호적인 또는 동정을 느끼는 관계를 많이 만들어 두라는 뜻이다. 빌런의 활약상을 서로 공유하고, (그들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분명 관심을 가질 것이다.) 경계등급을 높여 주자. 시간이 걸리지만 가장 확실하게 빌런을 고립시키고 필요할 때 나의 우군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너무 대놓고 쳐다보면서 악플 달지는 말아요


 소개한 요령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살면서 빌런이라고 칭할만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그리고 만난다면 최대한 엮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그리고 내가 그런 운 좋은 삶을 살길 바란다.




 돈이든 인간관계든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일지도 모른다. 운만 좋으면 빌런은 커녕 좋은 사람들만 만나며 살 수도 있고, 이는 수백억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삶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지식이 풍부하고 주변 소스도 풍부하며 투자금이 많아도, 운이 나빠 갑자기 원금 손실이 올 수도 있으며, 반면에 몰빵한 주식이 운이 좋아 몇십 배가 되어 조기 은퇴 후 유유자적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운이 가장 중요하다 하여 재테크를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까? 아니, 재테크를 공부하면 할수록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며, 손실을 빨리 끊어내고 다시 복구할 수 있는 능력과 멘탈도 생긴다. 재테크 전문가와 초보자는, 단기적으로는 초보자가 전문가의 투자 수익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백이면 백 전문가가 이기게 되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운'이라는 요소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이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에 삶을 맡기기보다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의 가치를 높이고 계테크에 대해 끊임없이 스터디하여, 생각을 확장하고 원칙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앞으로 마주할 모든 사람들이 균질하여 모나지 않고 상식적이며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스킬을 미리 연구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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