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은 용기를 쥐어짜 나온 결과물이다. 90년대 한국 가요계의 보석 같은 존재인 남성 듀오 '전람회'는 취중진담이라는 곡을 1996년 세상에 내놨다. 이 노래는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 불안해할지도 몰라'라는 고백의 밑밥을 노랫말로 던지는 본격 고백 노래다.
취중진담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한반도인들에게 새로운 고백 역사를 창조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취중고백이란 술에 취해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비누 거품처럼 보이는 와중에 마음 깊숙한 이야기를 실수를 가장해 내뱉고 거기다가 다음날 발을 동동 구르며 후회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고백은 일방적 통보이며, 강력한 의사 표현이다. 사랑뿐만 아니라, 신념과 사상, 원초적 욕구, 정의에 기반한 모든 고백이 그렇다. 감추고 싶은 날것의 고백일수록 용기는 더욱 필요하다.
시대에 따라 고백은 선언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자본론을 집필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한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이라고는 사슬뿐이고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쳤다. 저돌적인 그의 고백에 만국의 노동자는 뜨겁게 반응했고 세계를 뒤흔들었다.
고백은 뜨거운 열병의 산물이자 노동자의 해방이었으며, 술과 실수에 어깨를 기댄 정교하게 준비된 연극이었으며, 사회를 정화하는 도구였다. 그에 비하면, 내 고백은 거대하지도 풋풋하지도 간절하지도 않으며, 절대다수의 동의를 받을지도 모를 수준이다. 단출하고 동의도 받지 못할 고백을 지금 하려고 한다. 이런 고백을 할 때는 기교 가득한 스킬을 사용해야 한다. 북한산 정상에 올라 메아리를 외치듯 허공에 말하던가, 지금은 KBS스포츠월드로 이름이 바뀐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88체육관 실내 수영장 물에 뛰어든 후 물속에서 아무도 못 듣게 외치는 식이다.
간혹 술에 취해 전봇대를 잡고 고백을 쏟아내던가 눈에 보이는 데로 전화기 번호를 눌러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해 고백하는 방식을 고백계의 클래식으로 치는 일부 사람도 있지만, 이는 엄연히 잘못된 기술이며 고백의 역사를 더럽히는 행위다.
가장 고귀한 고백 방법은 책에 남기는 것이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는 지금과 다르게 유튜브를 보는 것보다 책을 펼쳐 읽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며, 요즘 아이들이 유튜브나 스마트폰에는 관심이 없고 책을 너무 가까이해 문제라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세상이 바꿀 수도 있다. 그런 시기가 왔을 때 누군가 이 책을 집어 들었고 때마침 너무나 사소한 고백 덩어리를 가지고 있다면, 형광펜을 손에 들고 문단 하나하나에 밑줄을 짝 긋고 열독할 독자 한 명이 창조되지 않을까.
나는 이런 독자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자신이 있다. 단출한 마음을 가지고 이게 고백할 거리인가 갸우뚱거리며 고민하는데 일생 대다수 시간을 써버리는 잔잔한 호수 같은 분류의 사람들 말이다.
내 고백은 이렇다. 나는 사실 사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없다. 그저 어디 웅크리고 숨어있고 싶었다. 허리를 실컷 웅크리고 두꺼운 유리잔에 황금색 맥주가 차오르고 거품이 넘쳐흐르는 걸 보면서 조용히 마시고 싶다.
맥줏집을 나설 땐 제법 찬바람을 맞고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도 봐주지 않길 바랐다. 아니면, 방바닥에 누워 창문에 걸린 짧은 흰색 커튼이 바람을 맞을 때마다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왔다가 창문으로 바짝 붙는 걸 보고 싶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청량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가만히 누워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역시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걸 깨닫고 편안한 마음으로 낮잠에 빠지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고백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면 단단하게 지켜주고 싶다. 용기를 쥐어짜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