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퍼튜니티 Mar 08. 2022

그 피자, 맛보면 눈앞에 별이 돌아

마음이 쓰여서

지구의 생명체는 어미의 품을 떠나는 순간부터 취향이 생긴다. 취향은 문화로 발전하고 전통으로 남는다. 세상을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일부 사람은 자신의 취향 앞에 '고귀한'이라는 머리말을 만들어서 다른 취향과 선을 긋고 평가하지만, 천박한 시도일 뿐이다.


취향에는 수만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음악만 해도 누구는 트로트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힙합이나 재즈를 사랑한다. 음악보다 상위 카테고리에 자리 잡은 취향은 '식성'이다. 지구에는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영장류인 우리가 슬프게도 지구를 정복했다. 우리는 우리의 입맛을 모두 충족하는 음식들을 만들어 냈다.


식성은 음식에 대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성미를 말한다. 성미는 성질이나 마음씨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씨는 인종과 지역, 감정과 날씨,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뉴욕시의 경찰들은 도넛과 커피를 아침이나 야식 대용으로 때우고 러시아 시베리아 벌판에선 컵라면에 마요네즈를 듬뿍 쳐서 먹는다. 한국인은 매운맛에 환장한다.


어떤 사람은 '피자'를 만들었다. 이런 사람에게 '위대한'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위대한 그는 자신이 만든 피자가 인류의 미래를 얼마나 찬란하게 바꿀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듯싶다.


20세기가 끝나가고 21세기가 다가오던 어정쩡한 어떤 날 서울 변두리 동네 곱창집에 모인 어떤 사내들은 곱창이 채 익기도 전에 화려하게 취하고선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이들은 곱창을 앞에 두고선 피자를 꼽았다. 평소 자주 먹는 건 햄버거이며 맛도 물론 있지만, 피자와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화의 핵심이다.


한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기억나? 옛날 주공 아파트 살 때 연탄보일러 있던 그 아파트. 그때 식빵에다가 치즈피자 뿌리고 피망에 케첩 얹고선 피자라고 엄마가 해준 거 피자 같지도 않은 그 피자. 그것도 맛있었잖아. 피자는 그런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음식은 피자뿐이었어, 한입 베어 물때 흐물거리는 치즈가 혓바닥을 덮고 제대로 씹지도 않은 채 목구멍으로 넘길 땐 눈앞에 별이 돌았어"라고 말했다.


"맞아. 맞아. 그게 햄버거와 피자의 차이야"


곱창을 앞에 둔 사내들은 열정적으로 화답하며 피자의 사생팬을 자처했다.


나는 눈앞에 별이 돌만큼 맛있었던 피자는 지금까지 딱 한 번 경험했다.

초딩 시절이었다.  이모는 미군 부대 앞에서 작은 가게를 했다. 당연하게도 가게를 자주 찾는 손님은 미군들이었다. 나에겐 그곳이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뒷골목의 잡화점이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사무실이었다. 신기함과 두려움 눈빛으로 덩치 크고 여유 있는 미군을 관찰했다.


가게를 찾는 미군은 백인보다 흑인이 많았고 90년대라서 모두 우드랜드 무늬의 군복을 입었다. 어느 날 한 흑인 군인은 피자를 선물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가게를 나섰다. 미군 부대를 구경하는 줄 알고 신이 났지만, 부대 정문은 지나쳤다. 나는 공식적으로 그곳을 들어갈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생소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넓었던 길은 한 명이 겨우 걸어갈 정도로 좁아졌고 담벼락은 높아졌다. 미군은 날 무동을 태우고 즐거워했다.


아마도 그는 피자를 먹고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알고 있던 거 같다. 길의 종착점에는 미군 부대와 연결되는 철문이 하나 있었다. 물론, 그곳을 통해서도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문이 열렸고 페퍼로니 피자 한 판이 내 품에 안겼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피자 박스를 열어 커다란 원형의 피자를 보여주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자리에서 피자 한쪽을 베어 물었다. 눈앞에서 별이 돌았다. 처음 느낀 맛에 지구가 도는 걸 알 정도로 어질어질했다. 다른 사람에게 미국에서 피자를 먹고 왔다고 거짓말하고 싶은 정도였다. 그 당시 진짜 그랬는지도 모른다. 길 가는 또래 친구들을 붙잡고 "너 피자 먹어봤어? 피자헛 같은 거 말고 미국 사람이 먹는 진짜 피자 말이야"라고 자랑할 정도였다.

다 커서 그때 먹었던 진짜 피자를 다시 찾기 위해 여러 골목을 누렸지만, 그때의 맛을 더듬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미국에 그런 피자가 있지 않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미국에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고로 아직도 미군 부대 후문에서 맛본 피자가 피자계의 이데아이며 이후에 맛본 피자는 이데아를 따라 하는 허상일 뿐이다.


때때로 초딩시절 그 기억이 미군 부대의 미군이 아닌 피자를 사랑하는 외계인의 손에 이끌려 우리 은하 끝단에서 구워진 피자가 웜홀을 타고 단숨에 지구로 넘어와 내 입에 들어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은하 끝단까지 가야 한다는 슬픔이 밀려오다가 상실감을 떨치기 위해 차라리 내가 피자집을 차리자는 각오로 후미진 골목길의 빈 상가를 유심히 찾아보기도 한다.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한번 맛보면 눈앞에 별이 돈다는 의미에서 '스타 스피닝 피자'다.

이전 03화 H2가 생각나는 친구 있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