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쓰여서
고등학교 때 버스 노선 속 정류장을 다 외우고 반복해서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약간 지적 장애가 있는 친구였다. 어떤 일로 장애가 생긴 지는 모르겠다.
내가 특별히 선해서 그런 건 아니고 지루한 학교생활을 조금이라도 유쾌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그 친구가 하는 말을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들어주고 호응도 잘 해줬다. 그렇다고 학교에 다니면서 특별한 일이 있거나 그 친구가 날 각별히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서로 인사 주고받는 평범한 학교 친구 사이였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갑자기 그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3학년은 수능 전후로 나뉜다. 수능이 끝났다는 것은 수험생의 모든 업보가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3학년의 겨울방학은 학교에 대한 미련은 더는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이런 시기에 온 전화는 갑작스러웠다.
전화기 너머로 이 친구는 "너 집 번호 어렵게 찾았어! 줄게 있는데 시간 좀 내줄 수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학교 밖에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 집 밖을 선뜻 나서기 어려웠지만 뜬금없는 친구의 요청에 일단 알았다고 답했다.
그 친구와 우리 집의 중간지점에서 보기로 했는데 30분 정도 걸어서 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짧은 거리였다. 나는 걸어서 도착했고 그 친구는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친구의 손에는 검정 봉투가 하나 있었다.
친구는 제과제빵학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자기한테는 대학보다는 빵 만드는 게 더 어울린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요새 직접 만든 빵을 너한테 주고 싶었어"
친구는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봉투에 담긴 빵은 따듯했다.
나는 가족들이나 다른 친구들한테 주지 왜 나한테 주냐고 물어봤지만, 뭐라 대답했는지 또 그때 나눈 대화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 친구도 그 이후 다시 볼 수 없었다.
제빵사가 되겠다고 한 말만 지금도 기억난다.
마음속으로 "얘 대단하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걸 정하지 못했는데 벌써 목표를 정했구나" 싶었다.
빵을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와서 눈앞의 빵을 두고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별것도 아닌 나에게 자신이 만든 빵을 주는 행위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도 어렵사리 연락처를 찾아서 말이다. 제빵 학원의 선생님이 친구에게 주라고 이야기한 걸까? 가족들은 너무 자주 먹어서 질려서 내 생각이 난 걸까? 어떤 계기가 들어서 나한테 연락을 한 걸까.
나라면 그 친구의 연락처를 찾아서 내가 만든 빵을 줬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썩 잘해준 건 아닌데 그 친구는 나에 대한 좋았던 기억만 간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빵을 한 조각씩 뜯어 먹으며 그 친구의 마음을 곱씹었다.
빵을 절반쯤 먹자 친구가 나에게 따듯함을 나눠줬다는 걸 알았다. 여전히 나는 그 친구만큼의 따듯함을 만들지 못하고 있지만, 그 친구 덕분에 내 감정을 조금 더 성숙하고 좋은 방향으로 자라게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