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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퍼튜니티 May 05. 2022

왜 오토바이를 타는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마음이 쓰여서

306 보충대나 논산 훈련소 어느 곳이든 입대를 하게 되면 인종과 나이 학벌, 재산 따위와 상관없이 훈련병이 된다. 훈련병은 신교대에서 군인이 되는 법을 배운다.


신교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5주. 한 주가 지날 때마다 군복 왼쪽 가슴팍에 작대기를 하나씩 그어 후배 기수와 차이를 준다.


5개의 작대기가 꽉 차야 비로소 이등병 계급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군인은 그때 이등병이라는 계급이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지 깨닫게 된다.


신교대에서 작대기 하나라는 계급은 지나가던 강아지보다 보잘것없는 존재로 취급된다. 신교대는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과거를 반성하는 어느 종교 공간보다 신성한 곳이다.


‘이등병이 꼭 되고 싶어’, ‘다음 주만 되면 나도 이등병이구나.’ ‘와 저 이등병님 정말 멋지다’


신교대 구내식당에는 간증과도 비슷한 이런 탄식들이 훈련병들 입에서 쏟아져나온다.


지금까지 글을 읽었다면, 도대체 군대 이야기가 오토바이 타는 이유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냐며 짜증이 밀려올 수도 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오토바이에 관한 이야기가 맞다.


신교대에서 첫 주는 하는 일 없이 바쁘다. 육체가 본격적으로 힘들어지는 건 둘째 주다. 이 시기부터 야간 보초 근무를 서게 되는데 육체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철모를 눌러쓰고 밤하늘을 올려볼 때면 외로움의 무게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난다. 훈련병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지고 대화도 뚝 끊기게 된다. 야간 보초 근무란 이런 것이다.


야간 보초 근무가 끝나면, 흙먼지에 뒹굴어 땀내 나는 군복을 벗을 수가 있다. 그리고 입어야 하는 옷은 주황색 활동복이다. 이 옷을 보는 순간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에 이렇게 추레한 옷이 있나, 입기만 해도 모멸감을 주는 옷이야’


옷은 활동복 한 벌뿐이다. 활동복을 입고 자고 아침을 먹고 저녁도 먹는다. 저녁을 먹을 때도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훈련병은 옆구리에 은색 식판을 끼고 분대원과(대략 8~10명) 열과 행을 맞춰 걷는다. 식당을 가는 길에 큰 소리로 군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맞춘다. 밥 먹으러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모두 빡빡하게 구는 게 신교대라는 곳이다.


“부모님의 피땀 흘린…. 절대 남기지 않는다! 식사 시작”이라는 구호와 함께 수저를 드는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듀프레인이 왜 교도소 옥상에서 죄수들이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흐뭇한 웃음을 보이며 지켜봤는지 비로소 알 수 있다.


느긋함은 쌀알 한 톨도 찾아보기 힘든 바쁜 저녁 식사를 끝내면 내무실을 청소하고 점호를 무사히 끝내고서야 두 다리를 누울 수 있다. 먼지 잔뜩 낀 매트리스에 햇빛에 바랜 까칠까칠한 군용모포가 지친 훈련병을 맞이해 준다.


땀내와 탄내 흙내가 범벅이 된 모포를 덮으면 ‘도대체 이건 언제 빨았을까’, ‘내일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언제 제대하지’ 등 이런 답 안 나오는 고민을 하다가 피곤한 몸을 못 이기고 이내 잠든다.


한주가 더 지나 작대기가 세 개로 되는 순간 새로운 일과가 생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달리기(구보)하게 된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의 근육을 다시 움직여 칼로리를 쥐어짜는 일은 정말 끔찍하지만, 구보를 끝낸 후 미소가 번져있었다.


훈련병의 구보를 이끄는 조교가 무미건조한 눈빛과 목소리로 ‘2소대 집합’이라고 외쳤다. 조교는 훈련병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하고 호루라기를 불어 구보를 시작한다. 조교는 군가를 시켜 훈련병의 구보를 더욱더 힘들게 하고 어떤 훈련병의 소리가 작은지 행렬 앞뒤로 돌아다니면 매번 확인하는 꼼꼼함도 잊지 않았다.


조교의 이런 행동에도 미소가 번지는 건 구보 코스 덕이었다.


끽해야 연병장 몇 바퀴 돌 거로 생각했던 예상과 다르게 조교는 부대 정문을 향해 뛰었다. 훈련병들은 자신의 두 발을 이용해 부대 정문 밖으로 나갔다. 시멘트 길을 달렸고 논을 지나쳤고 작은 나무가 몇 그루 있는 수풀을 지나갔다. 그렇게 달리자 옆으로는 정류장이 보였고 몇 미터 앞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큰 나무를 기점으로 다시 부대로 돌아왔다.


커다란 나무를 향해 가는 길 너머에는 산등성이 보였고 그 사이로 태양이 떨어져 하늘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물든 건 하늘만이 아니다. 전우의 뒤통수를 비롯해 탁한 회색의 시멘트 바닥에도 주황빛이 돌았다.


낮의 뜨거웠던 공기는 저녁에 선선해졌다. 부대 밖에서 차가워진 공기가 뺨을 스치는 느낌이 좋아서 숨을 크게 들이마셔서 폐 안으로 공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 이것이 자유의 공기란 말인가.


달리면서 느껴지는 바람을 잡고 싶어 손가락을 폈다가 접는 걸 반복했다. 바람이 눈썹을 지나가는 느낌이 좋아 눈을 감았다. 큰 나무를 지나면 몸을 빙글하고 돌려 군부대로 돌아가야 했지만, 내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생긴 순간이었다. 그때 느낀 감정은 강렬한 자유였다.

이미 제대했어도 해가 지는 저녁 시간 오토바이를 타다 도로에서 긴 신호를 기다리다가 신호등 대신 노을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순간 훈련병 시절의 감정이 오토바이 엔진을 타고 올라온다.


자신의 일터나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걸 알면서도 오토바이를 타는 건 짧은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게 오토바이를 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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