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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퍼튜니티 Jun 17. 2022

걷는 것도 취미라고 해도 될지

마음이 쓰여서

사람이 살다 보면 취미가 무엇인지 말해야 하는 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이 자리는 대부분 어색하다. 새 학기 처음 보는 친구들 앞에서 말하거나 면접, 아니면 미팅이나 소개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도구로 취미가 사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를 꽁꽁 숨기고 그럴싸한 것들로 둘러대는 악행을 저지르곤 한다. 독서라든지(사실은 만화책인데) 요리라든지(사실은 배달 음식을 주로 먹는데) 등산(산 입구 막걸릿집이 맛있다) 같은 뻔한 취미들이 난무하는 이유다.


내 취미는 너무 평범하고 단순해서 사람들이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멋진 취미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백패킹 캠핑, 모터사이클, 권투, 수학 문제 풀기 같은 교감하기 어려운 것들만 나열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취미는 걷기다. 언제나 걷는 건 즐거웠다. 고민이 있으면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걷고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생각하려고 걸었다. 겨울에는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었고 여름에는 가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싶어 집을 나섰다. 도시는 도시대로 좋았고 자연은 자연대로 좋았다. 안 가본 곳은 어색해서 걷고 싶었고 동네는 익숙해서 평온한 기분을 느끼며 걸었다.


걷는 게 왜 좋냐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답해줄 수 없다. 걸으면서 느끼는 공기와 햇빛, 밤이 깊어지면 나는 냄새, 왁자지껄 돌아가는 도시의 모습이 좋다. 예민할 때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암흑천지의 우주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구의 숨결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기분이긴 해도 중력과 공기, 적당한 온도와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근력의 소중함이 꽤 신나게 했다.


오래 걷은 후에야 떠듬떠듬 고백하기도 했고 술자리에서 못 나눴던 이야기를 걸으면서 풀어헤쳤다. 오래 걷다 보면 지나간 아픔이 탄식처럼 나와서 그림자처럼 뒤로 흘러갔다. 걸음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에어백 역할을 한다.


취미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장대하게 이야기하면 괴짜로 오해받기에 십상이라 취미를 숨긴다. 아니면 "그냥 걷는 거, 산책이지 운동 겸하는 거야 돈도 안 들고"라고 가볍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걷기가 취미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시간에 쫓겨 어딜 급하게 걷는 걸 취미라고 말하기 어렵다. 목적지가 있는 걷기는 예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엄격한 관점에서 취미로 쳐 줄 수 있다. 그러나 목적지라도 느긋해 보이는 건 괜찮다. 가령 걸어서 1시간 거리의 맛집을 가기 위해 걷거나 한강이 보고 싶어 무작정 걷는 건 취미라고 불러 마땅하다.

걷기가 아무리 좋은 취미라는 생각이 들어도 타인에게 무턱대고 추천하거나 강요하는 거만큼 꼴사납고 야만적인 것도 없다. 취미뿐만 아니라 강요가 동반된 일방적인 소통방식은 대개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다. 걷기는 어떤 노력을 들이지 않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공원을 걷거나 아기자기한 골목을 걸을 때는 알지 못했다. 홍대의 밤거리를 걷다가 이상한 점이 보였고 이후 공원이나 골목 한강에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홍대 밤거리에는 장애인을 볼 수 없었다. 마음을 먹어도 걸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거리에서 안 보인다고 그들이 없는 게 아녔다. 그들은 단지 거리로 나오지 않은 거뿐이었다. 세상에는 인생의 모든 걸 쏟아부어도 걷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걷기는 많은 걸 가져야 할 수 있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의 눈빛을 보면 지진이 난 듯 가슴이 흔들렸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날들의 반성이었다. 그렇다. 이래서 누군가 나의 취미를 물어보면 우물거리다가 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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