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퍼튜니티 Jun 19. 2022

도대체 왜 모이는 걸까

마음이 쓰여서

 "하는 것도 없이 도대체 왜 모이는 거냐?" 친구 한 명이 갑자기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먹기만 하면 뭐하러 모이냐면서 쓴소리했다. 고개를 돌리자 한 친구의 볼록한 배가 보였다.


모임에 가장 열정을 가진 친구는 "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의미가 있는 거지 1년에 두 번인데"라고 따졌다.


도대체 왜 만나는지 몰라도 우선은 만나게 되는 모임이 있다. 지금 말하는 이 모임도 뻔한 모임에 대한 이야기다.


10대 시절 작은 동네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십여 명 친구들이 모여서 지냈다. 공자께서는 "군자는 어울리되 패거리를 짓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짓되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씀했는데 우리는 어울리면서도 패거리도 지었으니 군자와 소인 어중간한 사이에 있지 않았나 싶다.


수능 100일 전 어떻게 구한 술을 가지고 산속에 들어가 100일 주를 마시며 자축했던 우리는 대학 입학 후에도 동네에서 서로 만나 신입생 환영주를 따라 주며 마시는 자축 이벤트로 발전했고 군대 가기 전 위로주를 마시는 식으로 성숙했으 군대 전역 축하주를 마시며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며 자조하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꼰대스러움을 보이기도 했다.


언제나 친구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뭉쳤다. 일주일에 5번을 보는 경우는 허다했으며 여자친구와 데이트가 끝나고 오는 길에 친구들을 만나 노는 일이 자주 발생해 여자친구들은 불같은 화를 내야 했고 친구들은 잦은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그래도 하나둘 결혼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이때쯤 몇 명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만나기 힘드니 모임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냐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어차피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을 보는데 뭔 모임이야 그냥 연락해서 하나둘 기어 나오면 되는 거지"라고 모임의 취지를 부정하며 따지는 친구도 있었지만, "어른들 보면 다 이런 모임 하나 가지고 있지 않냐"고 '어른'이라는 그럴싸한 키워드를 뽑아 든 친구로 인해서 모임은 별 어려움 없이 만들어지게 됐다.


열댓 명의 친구들이 한 달마다 소정의 금액을 내고 상반기와 하반기 한번. 1년에 총 두 번 보는 것으로 모임의 행태를 정했으며 모임에 가장 의미를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가 총무를 보기로 했다.


모임이 몇 번 반복되자 만나서 먹기만 하는 모임의 필요성에 의문을 보이는 친구도 생겼다. 이럴 거면 굳이 일정을 잡고 만날 필요 없이 아무 때나 봐도 되지 않냐는 합리적 의문이었다. 총무는 즉흥적으로 보는 건 그거대로 만나고 1년에 두 번밖에 안 보는 모임이 있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경조사 때 더 잘 챙겨줄 수 있다고 반박했는데 매우 건설적이고 10년 앞을 내다보는 논리라서 다들 그렇게 하라는 반응이었다.


가볍게 시작한 모임도 '100분 토론'처럼 날카로운 논리가 오가는 식으로 발전했을 때는 대다수 술자리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10년 앞을 내다보는 총무에게 매우 사소한 흠이 하나 있었는데 술이 들어가면 목소리가 매우 커진다는 거였다.


모임은 때때로 콜로세움이 돼 친구들의 말발을 대결하는 시간이 됐다. 장난기 많은 친구는 무기와 먹이(이야기 소스 거리)를 주며 전사(총무)를 조종해 싸움의 판을 키우기도 했다.


그렇게 모임 인원들은 탈퇴와 가입을 반복하면서 유지됐으며 만나서 먹기만 하던 방식에서 야구나 족구, 볼링, 탁구 같은 운동도 병행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최근 모임에선 족구를 했다. 대낮부터 모여 햇볕을 맞으며 공을 찼다. 각자 형편없는 실력을 뽐냈지만, 이따금 멋진 장면이 나왔고 합이 맞아 공을 주고받기도 했다. 몇 시간 했다고 벌써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으며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들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 말로 뱉어냈다. 목적 없는 대화는 방향이 없어 그만큼 자유로웠다. 서로 너무 많은 걸 알아서 더는 잘 보일 필요도 자랑할 것도 없는 패거리의 대화법은 대개 이런 식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한 장면.

어둠이 찾아올때쯤 잠시 쉬었던 족구를 다시 시작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하나둘 와이프에게 연락이 왔다. 어린 시절 늦은 시간까지 골목에서 공을 차다 보면 동네 엄마들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집에 들어오라고 보채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머뭇거리다가 공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으려면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만 했다.

시간이 왕창 흘렀고 이들에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보채는 사람은 엄마에서 와이프로 바뀌었다.


공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소년다웠던 우리의 한때가 남아있다. 그 소년은 일 년에 2번 정도 심드렁하게 우리를 찾아왔다가 머뭇거리며 헤어진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편이 가득했던 모임도 끝나갈 때면 다들 머뭇거리다가 아쉬움이 남은 채 헤어진다.

이전 14화 바람이 불었고 우리가 생겨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