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루하고 재미없던 운동이 애플워치를 구입하고 나서부터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으니 살짝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성북천을 걷기 전에는 ‘실외 걷기’를 켜고 헬스장에서 트레드밀로 걸을 땐 ‘실내 걷기’를 켠다.
지난 달부터는 필라테스를 등록해서 운동 앱에서 처음으로 필라테스를 켰다. 근력 운동이 조금 들어간 요가 정도로 생각했는데 한 타임(약 50분) 정도 받고 나니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최고 심박수는 무려 170BPM까지 뛰었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그동안 방치했던 몸 곳곳에 ‘잘 지냈지? 오랜만이야’라며 안부 인사를 전하니 우두둑 뼈 소리로 대답을 듣고나니 그동안 그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알겠다.
한 타임에 여섯 명이서 함께 수업을 듣는데 강사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 수강생들이 동작을 취할 때 매번 내 자세를 교정해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제일 못하는 거 같다.
그렇지 않아도 필라테스 첫 타임을 앞두고 ‘여자들이 주로 하는 운동이라던데 다 여자면 어떡하지?’ 걱정했었는데 다 여자분이셨다. (걱정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걱정은 사라졌다.)
두번째 타임에도 그렇겠거니 하고 시작 전 몸을 풀고 있었는데 남자 분이 한 분 들어왔다. 그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처음 보는 분인데 아는 척할 뻔 했다.
(그 이후 최근에 다녀온 타임에도 다른 남자 분이 오셨다.)
필라테스가 워낙 생소해서 동작을 취할 때마다 앞에 있는 분과 옆에 있는 분의 동작을 컨닝하면서 조금씩 따라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 틀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강사님이 오셔서 자세를 바꿔주신다.
강사님이 다음 동작을 배워보기 위해 기구에 고리를 걸어달라고 했을 때, 옆에 계신 여자분이 오른쪽에 거시길래, 왼쪽 고리를 오른쪽에 걸었다. 그런데 강사님이 내가 건 고리를 보고 ‘어라? 이거 왼쪽에 걸어주세요. 대각선으로 걸기 힘들텐데 어떻게 거신거죠…’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바로 아래에 고리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컨닝했던 여자분의 고리도 오른쪽 고리를 오른쪽에 걸었다. 뻘쭘함을 느끼며 고리를 왼쪽으로 옮기고 있는데 강사님이 내 뒤에 있던 남자 분의 고리를 보더니 ‘왜 남자 분들은 다 대각선으로 거시는 거죠!’라고 외쳤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거는 거 보셨구나’
괜히 미안했다. (저 말고 잘하는 분 컨닝하세요ㅠ )
그 전까지는 나 말고는 다들 너무 잘하는 거 같아서 살짝 기죽어 있었는데 그 남자 분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동작을 컨닝하듯이, 다른 분들도 옆에 있는 누군가의 동작을 컨닝하고 있다는 것.
되지 않던 동작이 갑자기 된 것도 아닌데 나만 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우리는 어떤 고민이나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꼭 그 문제가 해결될 때만 마음을 놓는 게 아니다. 나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만 깨닫고 그동안 긴장해서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활짝 핀다.
타인이 해결책을 주는 것도 아닌데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어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나 혼자 가지고 있으면 무겁고 나 혼자 아니라고 느끼면 가볍다.
그러니 어떤 고민이 있다면 고민 자체를 해결하려는 자세도 좋지만 나만 가지고 있는 고민이 아닌 증거를 발견할 것. 그리고 혼자만의 고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사실 나도 그렇다고 알려줄 것.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누군가를 보고 ‘세상은 아직도 따뜻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그런 행동을 한 나 때문에 누군가 그런 희망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는 철저하게 자신의 영향력에는 눈을 감고 있다.
- 책 <굿 라이프> , 최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