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걸 참 좋아한다. 물론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 내에 하는 편이지만 마감에 쫄리면서(?) 일을 끝마치는 게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스스로 게으른 편이라 생각했다. ‘왜 이렇게 미루면서 일할까?’ 과거를 돌아보면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아직 여유가 남았다는 이유로 빈둥거리기 바빴다. 그 사이 시간은 아주 잘 흘러갔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순간이 도착하면 그때부터 초유의 집중력으로 일을 일사천리 진행한다. 이 모습은 마치 시험 전날 눈에 레이저를 켜고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 그때부터 변한 게 없었다.
몇 주 전에 유튜브에서 KBS 방송 <대화의 희열3>에 출연한 오은영 박사 편을 본 적이 있었다. 진행자 중 한 명인 신지혜 기자는 무슨 일이든 최대한 미루다가 막판에 해치우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다고.
오은영 박사가 대답했다.
“보통 사람들은 숙제나 일을 미룬다고 하면 게으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니에요. 이 사람들은 잘하고 싶은 기준이 높은 거예요. 제대로 못 해서 적당히 해서 창피해하는 것보다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요”
오은영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을 무사히 끝마칠 때 후련한 감정보다 안도감이 먼저 늘었다. 마치 ‘살았다’와 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서 살았다는 느낌은 일을 완수해서라기보다 적어도 창피당하지 않겠다에서 기인한다.
주변에서 '정말 부지런하시네요', '정말 꾸준하시네요'라고 칭찬을 들을 때마다 '아니에요. 저 알고 보면 정말 게을러요'라고 겸손하게 말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부지런하고 꾸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스스로는 게을렀으면 게을렀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드물었다. 어쩌면 여기서 더 완벽해지지 못한 채 현상유지 정도만 하고 있는 것 같은 나를 보면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게으른 게 아니라 더 잘 해내고 싶었던 것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