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낮에도 눈꺼풀이 무겁다. 아침에 1알, 저녁에 2알씩 챙겨먹는 알레르기약 때문이다. 내성이 없는 약이지만 그래도 약은 되도록 복용하지 않으면 좋다는 생각에 멀리하려고 하는데 눈이 간지럽거나 코가 심상치 않으면 재빠르게 약을 챙겨먹는다.
이 약의 단점이 있다면 알레르기를 유발시키는 인자 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함께 나른해진다는 것. 복용 후 몇 시간뒤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흔히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고 나면 졸린 이유도 알레르기약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나른한 기분이 싫어서 알레르기를 약을 먹지 않고 버텨보려고 했다. 알레르기를 유발시키는 특정 장소나 몇몇 음식을 피할 수 있었지만 모두 피할 순 없었다. 특히 꽃가루가 날리는 지금과 같은 계절이 그랬다. 어딜 가나 계절은 항상 휘날리고 있었으니까.
“피하지 마세요. 더 괴로울 거예요.
어떤 것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세요”
병원 선생님 말씀처럼 알레르기 유발 인자들을 피하면서 살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간지러움을 참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알레르기 증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약을 먹는다. 나른한 기분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기로 했다. 약이 없을 때도 갑자기 간지러움이 느껴지면 바로 약국으로 가서 알레르기약을 산다. 물 한 컵에 약을 목 뒤로 꿀꺽 넘기고 나면 상황은 금세 좋아진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우리가 떠안고 있는 고민들도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안일한 생각 탓에 그대로 덮어두며 끙끙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모습은 마치 갑자기 집에 손님이 놀러올 때 정리할 시간은 없고 짐을 급하게 한 군데로 모아 급하게 이불로 덮어둔 모양새라고 할까.
심리학자 켈리 맥고니걸은 책 <스트레스의 힘>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내다보며 자기 혼자 고통받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무탈해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귀찮아서, 마주하기 싫어서, 두려워서 각가지 다른 이유로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고통을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두고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지금 가진 문제를 나 밖에 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이제 내려놓고 주변의 도움을 받자. 사실 이불 속에 온갖 정리되지 않은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진다.
상처와 고통의 양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일이 비정한 일인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비정한 일은, 네가 아픈 만큼 나도 아프다고, 그러니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지를 따지지 말자고 말하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픈 사람이다. 지배하는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저울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다.
-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53p, 신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