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이후, 세 번째 에세이집을 몇 년 만에 출간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쓴 글들이다. 첫 책, <사랑에 대한 어떤 생각>이 사랑,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타자를 통해 세상과 삶을 배우고 숙고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은 혼자, 혹은 함께 거주하는 공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자 대답이었다. 다음 이야기는 사람과 주거 공간을 넘어선, 사람 아닌 다른 생명, 또는 생명 아닌 다른 모든 사물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 그 사람과 공간 사이를 무수히 넘나드는 나와 당신 아닌 수많은 존재들의 거리를 지나가고 싶었다.
이번에 출간된 <하지 않은 세계>는 나 아닌 당신, 우리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통계적이고 설명적인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 않은 세계> 쓰기 위해 읽은 책들과 무수한 자료들을 보며, 나를 포함해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여러 문제, 특히 환경적 문제에 직면해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다르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의식이 없거나 문제적 상황에 대해 몰라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 설명, 통계는 무엇을 하게 하거나 하지 않게 하지 못한다. 물론 논리와 이성은 상황을 판단하게 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해하게 한다.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지만, 내 몸과 신체를 통해 깊이 감응하지 못하면, 그것은 대개 지식과 정보의 차원에서 머물고 만다. 그것들은 내 신체와 내 삶에 어떤 변화를 주지 못한다.
어릴 적 엄마 품을 기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건 이성이나 판단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론적 기초인 감각과 감정 때문이다. 다분히 사적이고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세계>에 담은 것도 실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설명’의 유혹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크고 작은 여러 감정과 감각의 사잇길을 함께 걷고 싶었다. 버려지고 먹히는 존재의 슬픔을 느낄 수 있고 또 감각할 수 있다면, 머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면, 더디긴 해도 나와 당신과 세상이 조금씩은 변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개 무엇을 하는 일보다 ‘하지 않은 일’에서 시작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쓰기보다 오늘 ‘하지 않을 일’에 대해 쓴다.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이라면,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영원할 것 같은 붉은 노을을 보고 당신의 포근한 냄새를 맡는 일이다.